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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서 계시지? 엄만 늘 그래"

강산21 2001. 10. 11. 01:26
경비아저씨 토니의 크리스마스이브새벽에겪은한일화
"아직도 서 계시지? 엄만 늘 그래"
시어머님은 오늘도 차가 안보일때까지 손을...

정은영 기자 jungey2341@hanmail.net   

며칠전부터 한복을 입고 내려갈까, 혼자서 애를 데리고 어찌 한복을 입고 갈까, 그래도 아이를 걸려서 한번 가볼까 하던고민은, 추석 당일 아침부터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단숨에 사그라 들고 멜빵바지에 스웨터를 걸쳐입고 하마 배처럼 불룩한 베낭을 메는 것으로 결론이났습니다.

아침 여섯시부터 부랴부랴 준비해 남편을 출근시키고 나선 길이었는데 시댁인 홍성에 도착하니 오후 세 시를넘어섭니다.

추석은 아무래도 도시에서보다는 시골에서 진짜배기로 다가옵니다. 차창 밖으로 펼쳐진 누런 황금들판이며 과일나무에 풍성히매달린 과실들이 보기만 해도 배가 부릅니다.

낮은 지붕에 유실수 몇 그루, 봉숭아며 맨드라미, 텃밭둘레에 심은 조,수수, 고추,파같은 것들이 남편의 고향인 시댁을 내 고향인 듯 정겹게 여겨지게 합니다. 게다가 시골집의 내 할머니처럼 다정하신(남편은 시부모님께서 늦게 얻은막내아들이고 시부모님은 일흔 중반을 넘기셨습니다.) 시부모님은 남편의 고향을 찾아가는 제 마음을 들뜨고 즐겁게도 합니다.

이른아침에 성묘를 다녀와서 형님 내외 분과 초등학생 조카녀석 둘이 앞 뜰 여러 그루 대추나무에서 붉은 빛이 돌기 시작하는 단물나는 대추를 큰바가지에 한가득 따 놓았다며 건넵니다. 어린 시절 차례후에, 할머니께서 손주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주시던 맛난 음식들 중에 유독 알굵은 풋대추를아껴 먹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한움큼 주먹에 쥐고 먹었습니다.

다음날은 아침상을 물리고 설거지를 끝낸 후 뒤란으로 밤을 주우러갔습니다. 밤 늦게 일을 마치고 내려온 남편이 뒤란 언덕배기에 기우뚱이 자라난 밤나무를 대나무 장대로 '탁 탁'두드려 주면 '툭 툭' 묵직한소리를 내며 초록색 밤송이가 떨어져 내렸습니다. 그러면 형님과 함께 지팡이로 이만큼씩 끌어다가 발로 양쪽을 밟아 눌러 빤들빤들 윤이나는 알밤을끝이 뾰족한 호미로 꺼내어 바가지에 모았습니다.

사촌오빠가 올려놔준 조그만 손수레에 앉아 소 사료를 주물럭거리던 딸이 기우뚱넘어지며 하얗게 사료를 뒤집어 쓰고, 떨어진 밤송이에 어깨를 맞아 고슴도치처럼 가시가 박혀 따가왔지만 함께 밤따는 일은 즐거운놀이였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콩을 포기째 뽑아다 마당에 쏟아놓으시고 도란도란 전에없이 정답게 얘기하시며 큰아들네 작은아들네 싸주실콩을 깍지에서 떼어내 모으셨습니다. 형님과 저도 밤줍기를 끝내고 멍석을 가져다 깔고 앉아 콩따는 것을 도왔습니다.

고물고물 콩벌레에제가 '으악'소리를 지르니 어머님께서 "콩벌레가 뭐 무섭간디 그기 뭐가 무서"하십니다.

"무서운 게 아니고요 그냥 징그러워서...으악."
"쟤 좀 보게 콩벌레가 뭐 무서버서그랴 개갈안나네."

올 추석에도 어머님께서는 양말 한 켤레씩을 준비하셨습니다.아주버님과 남편에게는 감색 신사용 양말을 형님과 제게는 연보라색 숙녀양말을 두 조카들과 딸에게는 곰이 그려진 검정양말을 주셨습니다. 조카가묻습니다.

"할머니, 할머니는 왜 맨날 양말만 주세요?"
어머님대신 조카의 엄마인 형님이 대답합니다.
"그건 주는 사람도부담없고 받는 사람도 부담없고 또 꼭 필요한 거니까."
"아아 그렇구나."

저는 올해 어머님 선물로 허리에 매는 전대를준비했습니다. 파든 열무든 텃밭에 가꾸어 돈이 될 만한 것은 무엇이든 장날 장에 나가 파시는 어머님께서 손지갑을 낡은 넥타이에 꿰어 허리춤에차신 것을 보고 준비한 것인데 몇 푼 안하는 그것을 어머님은 너무나 좋아하셨습니다.

올해도 참깨며 고춧가루, 밤, 대추에 떡이며전, 텃밭에서 갓 뽑은 파까지 싸주신 어머님은 염치없어 아버님께 드린 몇 푼의 돈까지 딸아이 옷을 사주라며 되돌려주셨습니다.

결혼하고 처음에는 죄송한 마음에 주시는 것을 사양했더랬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시부모님께서는 당신들이 주시는 것들을 며느리인 제가싫어해서 그런다고 섭섭해 하셨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정말 많아서 감당 못하는 것이 아니면 주시는 대로 무엇이든 챙겨옵니다. 남편도 주는 걸좋아하시는 부모님께 효도하는 건 그저 주시는 대로 받아다 잘 챙겨 먹는 거라고 말합니다.

시어머님은 오늘도 자동차가 보이지 않게될 때까지 길가에 서서 손을 흔들어 주셨습니다. 그럴때면 콧등이 시큰해집니다.

"엄마 아직도 서 계시지? 엄만 늘그러셔."

남편도 가슴속이 애잔한가 봅니다.  

친정 엄마는 제가 '일복이 없는' 곳에 시집갔다고 좋아하십니다.제 어머니는 젊은 시절 층층시하에 넷이나 되는 어린 시동생을 돌보며 바지 저고리를 지어 입고 부엌일에 밭일까지 하시며 '일복많게' 사셨습니다.그러니 당신의 딸들이 고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게 당연하겠지요.

2001/10/03 오전 2:17:45 ⓒ 2001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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