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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살아 있어서 고맙소"

강산21 2001. 7. 6. 00:46
경비아저씨 토니의 크리스마스이브새벽에겪은한일화
"지금까지살아 있어서 고맙소"
 

할머니 생일날, 할아버지가 건넨 사랑편지

엄상미 기자 orcha@hanmail.net    

"우와! 이거 보세요. 꽃속에 편지가 있어요!"

할머니가 선물로 받은 꽃다발을 빼앗아 펄쩍펄쩍 뛰던 손녀딸 진실이가 하얀 쪽지를 흔들어 보이며 소리 질렀다.마치 보물찾기 놀이에서 무언가를 찾아낸 듯 신이 난 얼굴이었다. 다들 눈이 둥그래져서 진실이가 내민 쪽지에 눈길을 모았다.

경기도미금시에 사는 백씨 부부. 여느 부모들이 중매혼인을 한 것에 견주어 보면, 아홉 살 차이를 무릅쓰고 연애혼인한 이들의 경우는 당시로선파격이었다. 물론 주위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부부가 살다 보면 이혼을 생각할 만큼 힘겨운 시간도 있기 마련이었다. 그 때마다 이들 부부는'우리는 연애혼인을 했으니...'라며 그 시간들을 지나오곤 했다.

남편 백씨는 예순여섯 살인 지금까지 개인 택시 운전을 한다.워낙 느긋한 성품이라 절대로 주행속도 80km를 넘지 않으며, 아파트 단지에서는 절대 서행이라는 원칙이 있어 어느 날 운전석 옆에 탄 부인 김씨가 화장실에 급히 가야 하니 조금만 빨리 갈 수 없냐고 하자 내려서 뛰던가, 걸어가라고 할 정도다.

'오늘은 쉬고, 내일은휴일이고, 그 다음 날은 기분이 좋아 또 쉬는 날'이 허다한 백 씨에게서 애면글면 돈벌이에 연연하는 모습이라곤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평생 맞벌이를 해온 부인 김 씨도 처음에야 복창이 터졌을 법도 한데 단 한 번도 남편에게 돈 벌어오라 채근한 적이 없다. 자식들도 이제는'취미'삼아 천천히 일하시라며 여유 있게 말하곤 한다.

며칠 전 부인 김 씨는 쉬흔여덟 번 째 생일이었다. 제 짝 찾아 출가한아들, 딸 내외가 모여 조용하던 집안이 모처럼 사람 사는 집 같았다. 조촐한 생일상을 물리고 자식들은 김 씨에게 준비한 선물을 건넸다. 그러자남편 백 씨는 쑥쓰러운 듯한 말투로 불쑥 한마디했다.

"나도 선물을 준비했다."

백 씨는 베란다로 나가 감춰두었던꽃다발을 들고 나타났다. 식구들은 다들 '우와' 환호성을 지르며 노인이 된 아버지의 선물에 감탄했다. 누구보다도 신이 난 건 손녀딸 진실이었다.할머니에게서 꽃다발을 빼앗아 이리 저리 빙빙 돌며 춤을 추는가 하면, 꽃 속에 코를 묻어 향기를 맡기도 했다. 그러다가 꽃다발 속에서 편지를발견한 것이었다. 희었을 종이는 얼마나 손을 탔으면 꾀죄죄했고, 꼬깃꼬깃한 걸 보니 몇 번이고 이리 저리 접어본 흔적이 역력했다.

남편 백 씨는 진실에게서 슬금 편지를 빼돌려 부인에게 주었다. 부인의 얼굴은 꽃보다 더 붉게 물들었다. 아무래도 어머니가쑥쓰러워할 것 같아 딸 재희 씨가 대신 읽어주려 하자 남편 백 씨는 여전히 쑥쓰러운 말투로 또 한마디했다.

"엄마 돋보기 갖다드려라."
부인 김 씨는 딸이 갖다준 돋보기를 쓰고서 남편의 편지를 더듬더듬 읽어 내려갔다.

여보,고맙습니다.
아들, 딸 잘 키워주고 지금까지 살아 있어서 참 고맙습니다.
......

편지를 읽던 부인 김씨의돋보기 안에서는 눈물이 방울로 맺히는가 싶더니 한쪽 볼을 타고 또르르 흘러 내렸다. 남편 백 씨도 부러 천장을 보며 눈가에 맺힌 눈물을훔쳐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식구들도 코 끝이 찡해졌다.

연애 시절에야 물론 가슴 뛰게 하는 사랑편지나 선물도 서로 곧잘했다. 하지만 누구나 다 그렇듯이 그저 하루하루 고단한 삶에 충실하며 젊은 사람들이나 하는 일로 밀쳐 두었던 터였다. 연애시절 주고 받은 편지나꽃다발 따위들은 기억 속에서만 가지런히 살아 있었다.

딸 재희 씨는 떨리는 손끝으로 썼을 엉성하기만한 아버지의 글씨를 들여다보며언젠가 안방에서 흘러 나오던 울음소리가 떠올랐다. 아직 출가하기 전이었던 그는 안방에서 들려 오는 난데없는 울음소리에 안 좋은 일이 생겼나 싶어가슴이 덜컹 내려 앉는 것 같았다. 방문을 열어 보니 이들 부부는 둘 다 얼마나 울었던지 눈가가 퉁퉁 부어 있었고, 수건으로 서로 얼굴을 닦아주며 여전히 눈물을 그치지 않았다.

무슨 일이 나도 단단히 났다며 은근 마음을 다잡기까지 했다. 한데 알고 보니 이들 부부는부인이 병에 걸려 먼저 저 세상으로 가는 내용의 텔레비전 단막극을 보고는 그렇듯 서럽게 울었던 것이다. 부인 김 씨는 드라마가 너무 슬퍼서 울기시작했고, 남편 백 씨는 자신들 생각이 나서 울기 시작했다. 부인 김 씨는 그런 남편의 모습을 보고 또 울었고, 남편 백 씨는 그런 부인의모습이 안쓰러워 또 울었다.

"당신, 아프지 말아야 해."
"여보, 먼저 죽으면 안 돼요."

35년만에 쓴아버지의 사랑 편지를 보며 오래 전의 그 때 일이 떠 오른 딸 재희 씨. 맞춤법 틀린, 그 꼬깃꼬깃한 아버지의 편지를 몇 번이고 읽으며 오래도록가슴에 새겨넣었다.

-제 친구 부모님의 이야기랍니다. 딸 재희 씨가 그 편지를 자랑스레 안방의 한벽면에 떡 붙여 놓았는데, 얼마 뒤 아버지가 슬그머니 떼어 내 버리셨답니다. 그걸 왜 버리셨냐고 딸이 채근하자, '까짓 거 내년에 또 쓰지뭐'라며 허허 웃으시더랍니다.

오마이뉴스에서 퍼왔습니다.

 오늘의노래  이제다시 힘을 내어요(러브)  부모님께(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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