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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어카에 인정을 싣고 '행복한 젊은 노년'

강산21 2001. 6. 26. 01:13
경비아저씨 토니의 크리스마스이브새벽에겪은한일화
리어카에 인정을싣고 '행복한 젊은 노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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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어카에 인정을 싣고‘행복한 젊은 노년’

-먹거리 행상 모영식 할아버지-

벌써 햇수로 8년. 새벽다섯시에 일어나 동네 한바퀴 돌고나면 할아버지는 곧장 역촌동 대리점으로 향한다. 두부 여섯판, 순두부 두말을 비롯해 각종 먹거리를 떼어 리어카에실으면 오전 8시. 다른 이들은 봉고차나 트럭을 이용하지만 그만은 유독 리어카에 놋쇠종을 울린다.

일요일만 빼고 하루도거르지 않는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풀가동’. “100원, 200원 남는 장사이지만 신용이 중요하기 때문”이다.아지매식당·김밥한마당·누이네집·남강식당…. 역촌시장을 지나 대조동 먹자골목까지 한바퀴 돌면 물건의 20%가 팔린다. 식당이 주거래처이지만할아버지는 약국이며 미용실, 철공소, 심지어 교회까지 일일이 안부를 물으며 지나간다. “장사 잘 되시죠” “좋은 하루 되세요” “건강은 좀어떠시우”. 점심 지나 한낮에는 주택가로 들어간다. 종소리 울리기를 기다렸다가 리어카를 놓칠세라 슬리퍼를 끌고 쏜살같이 달려나오는 주부들을위해서다.

처음 시작할 땐 고생이 많았다. 웬 뜨내기인가 싶어 거들떠보지도 않는 주민들. 그래서 홍보전단을 만들었다. ‘두부한모도 배달해드립니다’ ‘정말 맛있습니다’. 와이셔츠에 넥타이까지 매고 다니며 공짜로 두부를 맛보이기도 했다. 맛도 좋았지만 사람들은 그성실함을 높이 샀다. 500원, 1000원어치씩 사던 사람이 3000원어치씩 사주고, 철저한 시간맞춤에 단골식당도늘어갔다.

모할아버지의 고향은 경기도 화성. 농사꾼 부모의 2남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오산중학교에 경성전기공고까지졸업했지만 워낙 기반이 없어 그의 삶 역시 궁색했다. 노점상도 해보고 공사판도 여러군데 전전했다. 그래도 인천에서 독서신문을 보급할 때는 긍지가있었다. 그에 따르면 모일간지 발송부에서 스카우트하려 했는데, 국민들의 독서 함양을 위해 뛰어야 한다는 사명감에거절했단다.

하지만 가난은 면치 못했다. 여태 집 한칸 장만하지 못했고, 두아들 모두 대학에 보내지 못했다. 형편이 그러하니장남노릇 또한 제대로 했을 리 없다. 석달전 어머니를 저세상으로 떠나보내면서 그는 가슴을 치며 울었다. 쌀밥은 장남 밥그릇에 몰래 얹어주고,당신은 굶어도 아들이 학교 다녀오기를 기다려 찐감자와 찬물 한그릇을 소반에 내오시던 어머니. “내집에서 한번 편안히 못모셔보고 저승으로떠나보내는 죄책감에” 어머니의 시신에 연지곤지 찍으며 통곡을 했던 그다.

그래도 모씨는 명랑하고 넉살 좋기로 동네에서유명하다. 나이가 많든 적든 ‘형님, 동생’ 하며 이물없이 지내고, 가난을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부자란 열심히 일해서 생활을 조금 낫게만들고, 일을 함으로써 건강하고 행복해지는 사람”. 육순을 훨씬 넘긴 나이에도 리어카를 밀고 다니는 것은 “국민들에게 좋은 음식을 제공해야 하는의무감 때문”이란다.

돈없는 노인네들에겐 순두부 한접시 그냥 퍼주고, 처음 보는 이에게도 외상을 덥석덥석 안겨주는 착한사람. 역촌동·갈현동·대조동일대를 세바퀴 돌면 그의 하루도 저문다.

무려 40리길. 그래도 좀처럼 피곤한 기색이 없다.얼마전 리어카에 모터를 매단 덕분이지만 “내 평생 내세울 건 건강한 두다리”라고 자랑하는 그다.

두부판을 닦아 대리점에반납하고 나면 밤 아홉시. 불광동 집까지 쉬엄쉬엄 걸어가면서 가요 ‘고향아줌마’를 생각나는 대로 읊어댄다. 바지주머니에는 종일 땀흘려 모은2만원이 들어있다. 이날 이때껏 바가지 한번 긁을 줄 모르고 곁에 있어준 아내에게 가져다 줄 선물.

동대문시장과컴퓨터업체에서 일하며 제 앞가림을 하게 된 아들들은 “우리가 열심히 벌테니 이제 좀 쉬시라”고 만류하지만, 그때마다 모씨는 허리에 양손을 짚고이렇게 허풍을 떤다. “젊을 때 일해야지. 나는 리어카 밀고 다닐 때가 제일 행복하다. 아직 힘있고 쓸만하니 좋은 일 많이 하고죽을란다!”

/김윤덕기자 ju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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