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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인권 해법은 '평화'

강산21 2005. 11. 15. 15:02
북한 인권 해법은 ‘평화’
▲ 주종환 동국대 명예교수·참여사회연구소 이사장
미국은 유엔에서 유럽연합의 북한인권결의안에 편승하여 북한을 고립시키려고, 한국 정부에 찬성표를 던지도록 은연중에 압박하고 있다. 6·15 공동선언에 따라 북한과 평화적 공존과 협력을 바라는 한국 정부는 그 틈바구니에서 진퇴양난의 처지에 놓여 있다. 한국의 시민단체들도 이 문제를 둘러싸고 양분되는 양상이다.
 

북한 인권 문제를 논함에 있어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게 하나 있다. 북한이 한-미 동맹에 의한 지속적인 군사적 압박 때문에 오랫동안 일종의 ‘병영국가’ 내지 ‘전시체제’를 강요받아 왔다는 점이다. 한-미 동맹의 막강한 군사력에 대항하려면 어찌할 수 없는 선택이라는 평가도 있다. 도쿄대의 와다 하루키는 이 점을 지적한 바 있다.

 

6자회담이 성과를 거두어 한반도에 평화체제가 확립된 이후에도 북한이 인권 문제를 개선하지 않으면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그 이전에 이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시기적으로 적절하지 않다. 지금 이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북한을 타도하거나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비칠 뿐이다. 한국 정부가 유엔에서 북한인권결의안 채택에 찬성하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한국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한반도에서 전쟁만은 막아야 하는 절박한 처지에 있다. 6·15 공동선언도 그런 취지에서 나온 것이다.

 

한국 사회 일부에서는 북한 정권은 타도의 대상일지언정 협상의 대상일 수 없다는 강경론을 펴며, 인권 문제를 고리로 북한 정권을 타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평화적 교류 협력을 통해 북한을 연착륙시키고 정상적인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끌어들여야만 평화적 통일의 길이 열린다고 보는 한국의 대다수 평화애호 국민의 염원과 배치된다. 전쟁으로 쑥대밭이 된 뒤 무엇을 얻겠다는 것인가. 우리의 선택은 한반도의 평화체제 수립과, 남북 간 교류와 협력을 통한 평화적 통일의 길을 모색하는 것말고 무슨 대안이 있겠는가.

 

우선 시급한 일은 북한을 ‘병영국가’ 또는 ‘전시체제’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는 환경 조성이다. 북한을 악의 축이라 하여 목 죄고, 생명의 근원이라고 할 식량과 에너지 공급마저 차단하고, 막강한 군사력으로 압박한 것이 북한을 전시체제로 몰아 인권 문제를 악화시킨 주원인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유엔은 오래 전부터 국가보안법이 인권 유린의 소지가 있다 하여 한국 정부에 철폐를 요구하고 있다. 한국은 안보 위협이 북한보다 낮고 헌법에 자유민주주의를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이 권고를 거부할 명분이 없다. 그럼에도 보안법은 아직도 버젓이 살아 있다. 그런 한국이 북한인권결의안에 찬성할 자격을 갖추고 있는지 의문이다. 인권법으로 북한을 압박하는 미국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유엔을 무시한 채 이라크를 침공해 수많은 사상자를 내고 자국 내에 심각한 흑백 인종차별 문제를 드러내고 있는 나라로서 그럴 자격이 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인권 문제는 사람들의 마음을 쉽게 움직인다. 이런 심리를 이용하여 일부에서는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을 빌미로 북한 타도 운동에 열을 올리고 있다. 심지어 이 유엔 결의안에 기권하려는 한국 정부를 ‘빨갱이’로 몰아세우고 있다. 우리는 과거의 원한에 사로잡힌 이런 대중조작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지난 8·15 기념행사 때 남쪽에 화해와 평화와 미래지향적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북쪽 대표가 우리의 현충원을 참배했던 깊은 뜻을 우리는 소중히 키워나가야 한다. 여기에 부담을 주는 행동은 좌우를 막론하고 자숙해야 한다. 이것이 남쪽 사람들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주종환/동국대 명예교수·참여사회연구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