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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에 나타난 두목님

강산21 2003. 10. 15. 22:03

초등학교에나타난 두목님

불량청소년에서 교사로, 대전 대암초 이희철 교사  

글쓴이:권윤영기자(hooko@happyi.com)

가정형편이어려운 소년이 있었다. 돈도 없었고 사춘기를 잘 넘기지 못했다. 소위 불량청소년으로 찍혔던 문제아였다. 큰 사고는 없었지만 지속적으로 문제를일으켜 결국은 고등학교도 채 마치지 못하고 자퇴를 했다. 직장생활을 하며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자 돈을 벌어야겠단 생각에 막노동도 1년쯤 했다.이어 곧 검정고시를 준비했고 1년 간 학원을 다녀서 26살 늦깎이 대학생이 됐다. 얼마 후 소년은 교사가 됐다.

“남들보다 6년늦어서 선택의 폭이 좁기도 했고 두렵기도 했어요. 한편으로는 어린 시절이 너무 힘들어서 나한테는 아무도 없다는 생각, 피해의식 속에 살던 제가떠올랐습니다. 나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었으면 그렇게 지내지 않았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초등학교를선택했습니다.”

왜 교사가 됐냐는 질문에 솔직 담백한 대답을 하는 대전 대암초등학교 이희철(33) 교사. 그는 아이들에게 큰형님때로는 두목님으로 통한다. 그의 솔직함은 아이들 앞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아이들한테 그는 직접적으로 얘기한다. "까지면 안돼.싸가지 없는 거 안돼."라고 말이다. 주목받는 것을 좋아하고 특별한 것이 하나라도 있으면 관심이 집중되는 요즘 아이들. 일반적 기준으로 말하면아이들은 “또 시작이네”하는 눈빛으로 바라본다. 어른들의 19세기 잣대로만 아이들을 대하면 아이들은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렇기에 이 교사는대놓고, 그리고 톡 까놓고 이야기한다. 그것이 그가 아이들을 대하는 방식이다.

아이들이 단 한마디라도 그가 한말을 기억난다면만족한다는 그는 지난 99년부터 교사생활을 시작했다. 대전 대암 초등학교. 그가 처음으로 발령받아 교사 생활을 시작한 이곳은 15,000세대 중절반 이상이 기초생활수급자로 영구 임대 아파트 극빈층이 모여 사는 대전에서도 환경이 제일 열악한 학교다.

수업 후 학원에 다니느라바쁜 요즘 학생들과 달리 방과 후에도 아이들이 빠글빠글 학교에 남아 있는, 지원율 0%로 교사들과 장학사들에게도 외면 받는, 6학년 아이들이1, 2, 3학년의 기초 과정 학습이 안돼 있는 그런 곳이라면 믿을 수 있을까.

“방치되어 있는 학생들이 정말 많아요. 학교가마치 섬 같아요. 지역주민과 같은 공간을 공유하면서도 제 3의 공간 같은 느낌이죠. 반면에 저한테는 딱 인 것 같습니다. 교사가 단순한 지식전달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삶과 인생에 깊숙이 관여할 수 있다는 점이 이 학교에서의 강점입니다. 제가 원하는 교사생활이기도했죠.”

기초 생활 수급자가 한반에 열 댓 명씩이고, 1400여명 재적 인원 중 동사무소에서 공식적으로 확인된 수급자만500여명. “3년 전 밥을 먹다가 운 적이 있어요. 월요일 3학년 남자아이가 저보다 밥을 두 세배는 많이 푸고 꾸역꾸역 먹고 있었습니다.사연인즉 금요일에 라면을 먹고, 토요일은 칼국수를, 일요일은 빵을 먹었다며 밥을 며칠 만에 처음 먹는다는 것이었어요.”

그 역시초등학교 시절 같은 생활을 했었기에 그는 밥을 먹다가 화장실에서 펑펑 울 수밖에 없었다. 그 후로는 법적으로 금지돼있지만 가정방문을 시작했다.처음에는 부담스러워하던 학부모도 이제는 편안하게 이야기 하는 사이가 됐다. 집 드나들며 관심을 쏟아야 선생님도 이러는데 나도 관심을 가져야지하는 효과를 그는 기대하고 있다.

이 교사는 복도를 지나 가다도 아이들의 말 한마디에 귀를 기울인다. 대화 한마디 한마디를 유심히들어도 아이들의 생활이 쉽게 감지가 되고 알게 되면 지나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 그가 알고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아이들한테는 큰 위안이되곤 한다.


사랑에 굶주린 아이들이다 보니 한달에 한번씩 주말에는 야외에 나가곤 한다. 뒷산에 올라가 축구도 하며 시간을보낸다. “송사리 잡으러 가는데 갈 사람도 와라.”, “방학 때 풍물을 가르쳐 줄 건데 배울 사람 나와라.”라는 그의 말에 반 아이들 38명 중27여명이 방학에 학교를 나왔다.

“신나게 노는 것만 봐도 눈물이 나는데 송사리 잡으러 갔을 때는 약간 추운 날씨였는데 온 몸이다 젖어 가면서 그렇게 밝게 웃는 걸 본 적이 없었어요. 공부 잘하는 애, 집안이 어려운 애, 정신지체아가 한데 어우러져 노는 모습이감동이었습니다.”

이심전심이란 말도 있듯 아이들 일기 속에는 선생님에 대한 사랑이 드러난다. 때로는 교육청에서 실시하는 학력평가가있을 때에 아이들끼리 회의를 한다. 회의 결과는 ‘시험을 잘 보자. 우리 반은 행사를 많이 하기에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그래야 더 많이 놀수 있다는 것.’

매년 학기 초 그는 밤 12시 이전에 귀가하지 못한다. 학교에 나오지 않은 아이들을 잡으러 다니기 때문. 학교가문제인지, 가정이 문제인지 즉시 뽑아내지 않으면 장기화되기 때문에 그날 안나오면 그날 잡으러 가는 이 교사. 이 학교에서 5년째 근무하다 보니그의 정보망은 너무도 튼튼하고 촘촘하다. PC방을 돌며 전화해라 하면 아이들에게 전화가 걸려오고 그래도 안 되면 세이클럽에 들어가 아이들과쪽지를 주고받으며 정보를 수집한다. 바로 잡혀 오기 때문에 나중에는 아이들이 나갈 생각을 못한다. 때로는 아이들을 집으로 데리고 가 며칠동안같이 생활하기도 하고 직접 학부모를 찾아가 문제를 해결하기도 한다.

“당연히 저도 지치기도 합니다. 내가 무슨 팔자로 이러고있나하는 생각도 들고 어떨 때는 퇴근한 것 까지만 기억이 날 때도 있어요. 하지만 아이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게 ‘선한 절대자’입니다. 파워 있고능력 있는 사람일수록 그것을 남을 위해서 쓰라고 말이죠.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이니 그것을 저 스스로에게 적용하고 있어요.”

때로는 잘못 가르친다는 비판도 받는다. 사람마다 기준은 다른 법. 그의 교육 방법이 확신,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 힘든 점이다.그의 유별난 교육 방법을 비밀로 해야 하는 현실도 때로는 슬프다. 흐뭇한 마음이 들어도 아이들 앞에서는 표현을 잘 하지 못하고 다른 반에서자랑하는 이희철 교사. 아이들은 이미 그의 마음을 알고 있으리라. 표현하지 않아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진심 어린 마음과 마음은 통하는 법이니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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