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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 수청동... "빗물도 좋다. 물 한방울만..."

강산21 2005. 6. 9. 20:33
"빗물도 눈물도 좋다, 물 한방울만..."
[오마이뉴스 2005-06-09 09:14]
[오마이뉴스 박상규 기자]
▲ 철거민들이 54일동안 경찰과 대치해 생활했던 W빌라 옥상. 대형 고무줄 새총과 골프공, 돌이 쌓여있다.
ⓒ2005 오마이뉴스 박상규
"특공대가 아니면 절대 뚫을 수가 없다. 완전히 군사 요새다."

경찰의 강제해산에 맞서 철거민들이 54일 동안 생활한 오산시 수청동 W빌라 내부를 둘러본 사람들의 일성이다. 두 개 동으로 구성된 4층 규모의 W빌라는 경찰 특공대와 70m가 넘는 대형 크레인 두 개를 동원해야 할만큼 견고했다.

가스통 5개, 시너 30통, 화염병 400여 개

우선 외부인이 철거민의 허락 없이 W빌라 내부로 들어갈 수 있는 통로는 없다. 굳이 들어가야 한다면 8일 경찰 특공대처럼 공중을 통하는 길이 유일하다. 빌라 1층 출입구에서 철거민들이 생활했던 3, 4층으로 가려면 대형 철문 두 개를 통과해야 한다. 1, 2층의 모든 집 현관문은 쇠파이프로 용접해 봉쇄했다. 또한 외부로 통하는 모든 창문은 철판으로 막았다.

이런 W빌라 옥상 위로는 철골로 만든 4층 높이의 망루가 세워져 있다. 망루 안에는 LPG 가스통 5개, 10리터가 넘는 시너 30통, 화염병 400여 개 등 각종 인화물질이 쌓여있었다. 여기에 헤아릴 수 없는 골프공과 돌 그리고 자가 발전기까지, 철거민들의 '결사 항전' 준비는 철저했다.

▲ 철거민들이 설치한 망루 안에는 화염병, 돌, 골프공, 시너가 쌓여 있었다.
ⓒ2005 오마이뉴스 박상규
망루 안에는 이런 '무기'외에도 20kg 짜리 쌀 다섯 포, 컵라면 5박스, 휴지와 생수 등이 구비돼 있었다. 빌라를 경찰에 내주더라도 망루 안에서 얼마동안 더 저항하기 위한 준비물로 보인다.

철거민, 거실에 통로 만들어 경찰 특공대의 공중 투입에도 대비

철거민 30명은 W빌라 101동 3층과 4층, 모두 집 4개를 사용했다. 집 내부에는 옷과 간단한 의약품 등 최소한의 생활 용품만 있었다. 그러나 주방으로 사용된 402호에는 TV와 냉장고, 전자렌지 등이 있어 일반 가정집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다만 거실에 쌓여있는 20kg짜리 쌀 삼십 포, 라면 6박스, 건빵 4.5kg짜리 세 포, 수많은 커피와 녹차 등이 이곳이 집단 생활했던 곳임을 보여줬다. 집 내부 벽 곳곳에는 '투쟁하는 철거민이 철거에서 해방된다', '땅 장사 집 장사 주택공사 박살내자' 같은 구호가 적혀 있다.

▲ 철거민들은 빌라 거실 바닥에 경찰 특공대의 공중 진입을 대비해 탈출 구멍을 뚫어 놓았다. 라면과 쌀 등으로 가려 놓은 모습.
ⓒ2005 오마이뉴스 박상규

▲ 철거민들은 빌라 거실 바닥에 경찰 특공대의 공중 진입을 대비해 탈출 구멍을 뚫어 놓았다.
ⓒ2005 오마이뉴스 박상규

▲ 철거민들은 빌라 거실 바닥에 경찰 특공대의 공중 진입을 대비해 탈출 구멍을 뚫어 놓았다. 3층에서 지하 1층까지 뚫려있다.
ⓒ2005 오마이뉴스 박상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지상 3층부터 지하 1층까지 W빌라의 모든 거실에 가로세로 60cm의 통로가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철거민들이 경찰 특공대의 공중 투입에 대비해 지하로 탈출할 수 있도록 만든 비밀 통로로 보인다. 이 비밀 통로 위에는 평소 철판을 대고 쌀이나 가재 도구 등을 쌓아 평소에는 알아 볼 수 없게 만들었다. 아래는 경찰 특공대에 투입에 관한 한 철거민의 일기 내용이다.

"경찰 특공대 투입 대비해서 타이어 준비하고 나무 쌓고 만반의 준비 완료했다. 주민 한 사람은 특공대 침투하면 개망신 당하니 오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가 테러범인가, 간첩인가. 경찰이 철거민과 싸우려고 특공대까지 동원하겠냐 싶다." (2005년 6월 1일)

"물 한 방물만 다오"

"빗물도 좋고 눈물도 좋다. 물 한 방울만 다오."

"오늘도 많은 비가 내리길 기도 드립니다."

투쟁 구호와 더불어 집 내부에 적혀 있던 문구다. 오랜 단전 단수로 철거민들이 겪은 고통이 역력히 나타나 있다. 오산 수청동 철거민들은 경찰의 봉쇄로 46일 동안 단전 단수 속에서 생활했다.

▲ 수청동 철거민들은 56일 동안 단전, 단수 속에서 생활했다. 이 문구에는 이들의 고단한 생활이 담겨 있다.
ⓒ2005 오마이뉴스 박상규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와 교체된 화성 경찰서장과의 협상으로 단전 단수는 5월 말경에 풀렸다. 그 때까지 철거민들은 외부에서 반입되는 최소한의 물로만 생활했다. 그래서 빌라 옥상에 임시로 재래식 화장실도 만들어 놓았다.

수청동 주변 주민들은 경찰과 철거민의 오랜 대치 종료를 반기는 분위기다. 철거 지역 옆에서 주유소를 경영하는 김아무개씨는 "그동안 철거 싸움 때문에 장사가 안 됐고 무엇보다 화염병이 날아올까 걱정이었다. 양쪽 모두 큰 부상 없이 대치 상황이 끝나 다행이다"고 말했다. 인근 아파트 주민들도 "많이 무서웠는데 큰 사고 없이 끝나 다행"이라고 입을 모았다.

수청동 철거민이 여론 지지를 못받은 이유

오산 수청동 철거민들의 싸움은 처음부터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지난 4월 16일 철거 용역 직원이 숨지는 사고 있었지만 무엇보다, 수청동 철거민은 "빈민이 아니다"라는 목소리가 컸다.

54일 동안 농성을 벌인 수청동 주민 8가구 11명 모두는 세입자가 아닌 가옥주들이다. 기존 철거민들 대부분이 세입자들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크게 다른 점이다. 이들이 주되게 요구했던 것은 '이주자 택지'를 구입할 수 있는 권리를 달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수청동 재개발이 완료되면 개발 지역 내 땅 약 70평을 시가보다 30%정도 싸게 살 수 있는 권리를 말하는 것이다. 이 권리는 재개발 공고가 난 2001년 9월 25일 이전에 수청동에서 가옥을 소유하고 실제로 거주했던 사람에게만 주어진다. 그러나 8일 연행된 철거민들은 이 두 가지 요건이 충족되지 않았던 주민들이었다.

주공 쪽과 오산시 부동산 운영자들은 현재 이주자 택지 70평에는 프리미엄만 1억 원이 넘게 붙어있다고 말했다. 오산시 수청동 98만3천여평 일대에는 2008년 말까지 모두 1만6천여 가구의 공동주택이 지어질 예정이다. / 박상규



/박상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