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신드롬’ 의 뒤안
△ 조홍섭 편집부국장
지난 며칠 동안 우리는 황우석 교수팀 덕분에 한껏 우쭐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복제양 ‘돌리’를 탄생시킨 영국의 과학자들은 지난
19일 유럽 최초로 인간배아 복제에 성공했다고 발표했지만 같은 날 황 교수팀의 ‘맞춤형 배아 줄기세포’ 성과에 묻혀 빛을 잃었다. 한국이 1년여
전에 이룬 내용이었다. 과학적 성과를 과장하길 꺼리고, 특히 한국의 평가에 인색한 세계 권위지들의 후한 수사를 보면 더욱 그렇다.
<뉴욕타임스>는 “남한 과학자들이 세계의 경쟁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고 썼고, <워싱턴포스트>는 “눈부신 성과”라고
추어올렸다. <가디언>은 한 술 더 떠 “맞춤형 의학을 향한 극적인 큰걸음”라고 했다. 한국 연구진의 놀라운 근면성을 설명하면서
“그들은 365일 내내 일한다. 4년마다 예외가 있는데, 그 때는 366일 일한다”는 따위의 농담도 싫지 않다. 언제 우리 과학계가 이런 대접을
받은 적이 있었던가.
황 교수 후원회 홈페이지엔 “이제 살아야 할 이유가 생겼다”는 난치병 환자들의 눈물겨운 감사와 희망의 글이 줄을 잇는다. 인터넷 팬
카페가 잇따라 생기고, ‘줄기세포’가 뭔지 모르는 사람들도 연구성과를 화제로 올린다. 원하는 연구비는 다 대주고 경호도 대통령과 삼부요인에
버금가는 급으로 격상시켰다. 그야말로 ‘황우석 신드롬’이다.
하지만 지진해일처럼 덮친 황우석 열풍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없을까? 무엇보다 지난해 황 교수팀이 인간배아 복제에 처음 성공했을 때 쏟아져 나왔던 생명윤리와 기술적 위험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일제히 사라진 게 이상하다. 시민·환경단체들은 그 흔한 성명서 하나 내놓지 않았다. 배아복제에 비판적이던 민주노동당은 논평을 내놓지 않았는데도 지난해 발표한 논평을 문제 삼아 수백명이 “지지를 철회하겠다”며 거세게 항의하는 글을 게시판에 올려 곤욕을 치렀다. 이번 줄기세포 연구가 실용화를 향해 중요한 한 걸음을 내디딘 것은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도 아니다. 이번 연구로 가능성이 불분명했던 배아 복제가 오히려 뚜렷한 가능성과 위험으로 다가왔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그렇다면, 황 교수팀에 대한 찬양 일변도의 사회적 분위기에 압도돼 정당한 비판이 숨죽이는 분위기에는 어딘가 전체주의 냄새가 난다. 그곳에서 토론은 질식할 수밖에 없다.
배아 줄기세포 연구는 많은 논란거리를 안고 있다. 그 핵심은 자궁에 착상시키면 사람이 될 수 있는 복제배아를 줄기세포를 얻기 위한 ‘도구’로 쓴다는 것이다. 물론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생명을 위해 현재 고통받는 사람들을 외면할 것이냐?”는 항변도 있다. 반면 “마지막 단계의 삶을 지키려고 삶의 첫단계를 망가뜨릴 수 있나?”란 질문도 있다. 윤리적 문제가 없는 성체 줄기세포와, 효능이 나은 배아 줄기세포 중 어느 것을 선택할지도 어렵다. 배아 줄기세포의 무한한 잠재력에 눈을 감기 힘들지만, 동시에 인간의 배아를 도구로 쓰기 시작한 종착점이 복제인간과 형질개선 인간이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여지는 ‘멋진 신세계’가 될지 모른다는 걱정에도 일리가 있다. 이 모든 결정을 과학자와 일부 정책 결정자에게 맡겨 놓을 것인가.
배아 줄기세포로 고통받는 난치병 환자를 구하겠다는 황 교수의 숭고한 뜻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복제기술이 어떻게 응용될지는
그의 통제력 밖의 일이다. 사회적 토론과 감시가 필요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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