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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세상]① 구두닦은 돈으로 이웃돕는 이창식씨

강산21 2002. 6. 26. 15:23
[따뜻한 세상]① 구두닦은 돈으로 이웃돕는 이창식씨
구두닦이 '이창식'씨, 구두닦은 돈으로 어려운 이웃도와

그의 가게는 정말 작았다. 두 사람이 들어가 앉아도 발을 제대로 뻗을 수 없을 만큼 그의 가게 안은 비좁았다. 그러나 자신보다 못한 사람을 돕고 싶다는 그의 생각은 그 어느 것보다 컸다.

서울 성수동 한 은행건물 옆에서 20년동안 구두를 닦아온 이창식(46.사진)씨는 매월 수입의 1%를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기부하고 있다.

구두 한 켤레 닦으면서 한달 모은 돈 1백만원. 이씨는 매월 1만원씩 '아름다운 재단(www.beautifulfund.org)'을 통해 자신보다 어려운 이웃을 돕고 있다. 수입도 수입이거니와 오히려 자신이 도움을 받아야 할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남을 돕겠다고 나선 데는 그만한 사정이 있다.

"결혼 실패 후 다시 찾은 삶 나누고파"

지금부터 약 20년전. 페인트공으로 일하면서 지금의 구두닦는 일보다 더 많은 수입을 올렸던 이씨는 꾸준히 할 수 있는 자신만의 일을 찾았다.

"페인트칠은 비가 오면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꾸준히 할 수 있는 일을 택한 것이 구두닦이입니다. 욕심을 버리니 뭐든 하겠더라구요."

구두닦이로 10년동안 악착같이 돈을 모아 시골로 내려가 농장을 운영할 계획이었다. 37세 나던 1993년 그 해 그는 중국교포와 결혼했다. 그러나 브로커 등으로부터 사기를 당하면서 10년동안 모은 돈을 하루아침에 날리고 말았다. 결국 10년 공든 탑은 무너지고 결혼도 실패했다. 그 후 그의 삶은 술의 연속이었다.

"타락했습니다. 매일 술로 날을 보냈습니다. 일도 하지 않고..."

그러던 어느날 팔순 노모보다 먼저 병들어 자리에 누우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그는 술과 담배를 끊었다. 다시 구두닦이로 돌아온 이씨는 다시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지난 10년동안 구두만 닦았다.

약 1년전인 지난해 설 무렵, 다시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한 그는 자신보다 못한 사람을 도와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도 무척 어려운 삶을 살아왔던 이씨는 그 누구보다 돈 없는 서러움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돕고 싶다는 생각에 이곳 저곳을 살펴보았다. 한번으로 그치는 도움이 아니라 평생 도울 사람을 찾아 나선 것이다.

"일회성으로 도와주면 중간에 흐지부지될 수도 있고 바쁘다는 핑계로 소홀해질 수도 있었기 때문에 평생 도울 방법을 찾았습니다."

그러던 차에 TV를 통해 '아름다운 재단'이 주관하는 '1% 나눔의 운동'을 시청한 그는 더 이상 망설일 일이 없었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의 1%를 나누어주자는 운동에 참여키로 한 것이다. 돈도 좋고 노동력도 좋다. 자신이 남을 위해 뭐든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 어떤 것이든 좋았다.

그때부터 매월 수입액의 1%로 아름다운 재단을 통해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을 돕고 있다. 구두닦이 가게 한켠에 걸려 있는 작은 달력엔 매월 25일에 표시가 되어 있다.

"매월 25일 제 통장에서 1만원씩 자동이체됩니다. 작은 정성이지만 저보다 어려운 이웃에게 쓰여진다고 생각하니 뿌듯합니다."

자신이 기부한 돈이 남을 위해 어떻게 쓰여지는지, 정말 남을 위해 쓰여지는지 의심이 갈만도 하다. 이씨는 그런 의심을 버린 지 오래됐다고 말한다.

"저도 처음에는 그 점이 맘에 걸렸어요. 그러나 아름다운 재단의 운영행정을 보면 매우 투명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수입사업도 하지 않아서 기부금 전액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사용되지요. 그래서 이젠 그런 걱정은 하지 않습니다."

결혼 실패와 좌절을 딛고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이씨는 자신의 삶을 이웃과 나누고 싶어 몸소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20년 구두닦이 인생

구두닦는 직업도 계절을 탄다. 여름철보다는 겨울철이 제철이다.

"여름에는 장마도 있고 해서 구두를 많이 안닦아요. 오히려 겨울철이 되면 부츠를 많이 닦지요."

그나마 IMF이후 일감이 많이 줄었다. 요즘은 구두 수선으로 수입을 충당하지 않으면 그나마 수입이 형편없다.

하지만 20년동안 한자리에서 꾸준히 구두를 닦는 이씨의 성실함 때문인지 단골도 늘었다. 집에 무슨 일이 있어 며칠 자리라도 비우면 난리가 난다.

"예전에 어머니가 아프셔서 병간호차 며칠 가게를 쉬었다가 다시 문을 열었더니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무슨 일이 생긴 줄 알았다며 걱정을 해주셨습니다. 이게 사람사는 세상이 아닌가 합니다."

그의 하루 일과는 오전 9시 구둣가게 문을 열면서 시작된다. 9시가 되면 구두를 닦거나 수선하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100여명이 넘는 단골을 만들기 위해 그는 밤 9시까지 하루 12시간을 일했다. 더 일하고 싶어도 딸 아이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도 못한다.

"집에 들어가면 10시가 넘는데도 딸 아이가 밥을 그 시간까지 굶은 채 저를 기다리고 있어요."

15만원 월셋방의 행복

그의 구둣가게엔 때묻은 집기들이 빼곡하다. 구두 굽을 모아둔 작은 서랍과 구두를 올려 놓고 수리하는 도구인 '개다리'도 10년을 훨씬 넘겼다.

이씨 가족은 단 세 식구. 이 세 식구가 한지붕 아래 둥지를 틀기까지 그의 개다리 만큼이나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팔순 노모와 8살짜리 딸을 부양하고 있는 이씨는 겨우 한달 전 세 식구가 한지붕밑에서 살게 되었다며 좋아했다.

"돈이 없어 딸 아이는 어머니댁에 맡기고 전 돈만 벌었습니다. 정말 힘들었습니다. 이제라도 한 지붕에서 같이 사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집 1천만원 보증금에 15만원 월세를 살고 있다. 그 작은 방 한 칸에 세 식구가 모여산다. 그나마 5백만원에 13만원이던 것이 올랐다.

이씨는 세상이 너무 차갑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고 했다. 사람이 자신만을 알고 이웃을 못 본채 지내는 이 세상이 차갑다고 했다.

"최근 대구에서 일어난 일을 잊을 수가 없네요. 먹을 것이 없어 자살했다는 뉴스를 접하고 '세상에 이럴 수가 있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웃도 너무 무심하더군요. 이웃집에서 조금만 보살폈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텐데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 이웃을 너무 모르고 사는 것 같습니다."

이때 갑자기 이씨의 목소리가 격앙되기 시작했다.

"누구는 몇 천억씩 해 먹고도 멀쩡하고 누군 먹을게 없어 자살하고... 세상이 이렇습니다."

"더 많은 도움을 주기 위해 농장을 할 겁니다."

그의 꿈은 시골에서 작은 농장을 경영하는 것이라고 했다. 농장을 하고 싶은 이유가 남을 더 많이 돕고 싶어서라 했다.

"돈 많인 벌어서 시골에서 작은 농장을 하면서 종업원들과 수입을 함께 나누어 갖는 것이 꿈입니다. 또 그 수입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더 많이 도울 수도 있고요."

그는 그의 돈이 국가보조금조차 받지 못하는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쓰여지길 바라고 있다.

<중앙일보 사이버리포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