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그 사람...

몸은 보냈어도, 당신의 꿈은 지키렵니다

강산21 2009. 5. 30. 21:05

[사설] 몸은 보냈어도, 당신의 꿈은 지키렵니다
사설
한겨레

이제 그는 떠났다. 삶과 죽음이 한 조각 자연이 아니더냐던 말대로 한 줌 재가 되어 흩어졌다. 때로 포효하고, 때로 속삭이던 그의 목소리는 들을 수 없고, 천진한 웃음, 선한 눈물 또한 볼 수 없다. 지키지 못했음을 자책하며 가슴을 치던 국민들은 이제 깊은 상처 속에서 기억하고 추모할 뿐이다.

 

그러나 몸이 떠났다고 그의 꿈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육신이야 불과 물과 흙과 바람으로 흩어지기 마련이나, 영혼에 새겨진 그의 꿈은 사라질 수도 지워질 수도 없다. 진실로 사람 사는 세상을 이루고자 했던 그 열망은 지금 광장의 촛불과 성찰의 도저한 물결을 이루었다. 몸은 떠나보냈지만 그의 꿈마저 보내지는 않겠다는 다짐의 불길로 타오르고 있는 것이다.

 

꿈은 언제나 불가능해 보이고, 불가능해 보이기에 꿈이라고 하는 법이다. 그런데 그는 항상 불가능한 꿈을 꿨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온몸을 던졌다. 절대권력, 절대폭력, 절대증오가 그 앞을 가로막고 있어도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만신창이가 돼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가 마지막까지 아름다웠고 순정했던 까닭은, 아주 오래전 한 청년이 가졌던 꿈을 죽는 날까지 버리지 않고 추구한 데 있다.

 

그 꿈은 특별한 게 아니다. 그저 헌법에 나와 있는 대로 국민이 주인 되는 세상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것은 민주공화제에선 당연한 조건이기에 꿈을 꾸고 자시고 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던 세상은 이마저 꿈속에서나 소망해야 했다. 헌법은 사유화한 권력에 의해 찢기기 일쑤였다. 권력이 온전히 국민을 섬기는 그런 세상을 꿈꾼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그러나 이 꿈은 실현되지 않았다. 그의 퇴진과 함께 권력은 사유화됐고, 국민을 억압하는 소수 집단의 몽둥이가 되었다. 공교롭게도 그를 죽음에까지 몰아넣은 것은 바로 그 사유화한 권력이었다.

 

그는 또 모두가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꿨다. 노동자·농민·서민 등 사회적 약자가 어깨를 펴고, 이주노동자 등 소수자의 인권과 생존권이 존중받는 것이었다. 힘이 없고, 가진 게 없고, 배운 게 없다고 외면당하고 배제당하고 차별당하지 않는 그런 세상이었다. 시장에 굴복하는 듯한 태도로 말미암아 훼절 논란이 빚어지긴 했다. 그러나 그건 수단의 문제였을 뿐 그가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향한 애정과 꿈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따듯한 공동체와 형제애 그리고 연대를 강조했다. 적자생존과 승자독식이라는 정글의 법칙을 지양하고, 상생과 공존의 원칙을 세우자는 것이었다. 밥을 나누는 정의, 기회를 나누는 정의의 실현을 꿈꿨던 것이다. 사실 그가 정치생명을 걸고 추구했던 지역주의 극복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지역감정은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열의 근본이었다. 분당이나 대연정 구상 등 논란의 여지가 많은 구상을 내놓은 것도 이 때문이었다. 지역주의 극복의 꿈은 정치인 노무현의 영원한 숙제이자 꿈이었다. 그래야 연줄과 연고를 넘어 원칙이 통하고, 정당한 노력과 올바른 비전으로 평가받는 세상이 올 것이라고 믿었다.

 

장례 기간 시민들이 그렇게도 가슴을 쳤던 것은 이런 그의 꿈이 외면당하고 배척당하는 데 일조한 것 아니냐는 자책과 무관하지 않다. 같은 길을 가는 이들도 작은 차이를 부각시켜 적대하고, 비난하고, 갈등하고, 분열했다. 그는 언제나 좌우 양쪽의 몰매를 각오하며 살아야 했다. 사람보다 돈을 섬기는 권력, 상생과 공존보다 경쟁과 배제를 중시하는 집단이 득세한 것은 그로 말미암은 치명적 결과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평화와 연대는 갈등과 분열로 이어졌고, 가난한 이들은 더욱 가난해졌다. 의를 실천하던 이들은 잇따라 핍박당하고 희생됐다.

 

미망 속에서 빠져나오게 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그의 죽음이다. 그의 죽움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알리고 있다. 그의 죽음과 함께 꿈은 되살아나고, 그의 꿈은 바로 우리의 꿈이 되고 있다. 이제 그것은 밀려드는 어둠을 밝히는 촛불이 되어 광장에서, 가난한 이들의 가슴에서, 의로운 이들의 두 손에서 타오를 것이다.


그는 이제 한 줌 재가 돼 태어나 자란 곳으로 돌아갔다. 그를 맞이하는 봉화산 기슭엔 지금쯤 찔레꽃이 하얗게 피었을 것이다. 가난한 이들의 꽃,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의 가슴에 피어나는 꽃, 여린 누이 같고 따듯한 어머니 같은 꽃, 언제나 낮고 그늘진 곳에 피어나는 꽃, 그러나 끝내 꺾이지 않는 꽃, 첫 맹세의 아련한 향기로, 그를 닮은 찔레꽃은 피고 또 필 것이니, 우리의 5월은 외롭지 않다.

 

그러나 다짐하고 또 다짐해도 밀려오는 슬픔을 어쩔 수 없다. 이 찬란한 계절, 사랑하는 이들은 왜 그리 속절없이 떠나는가. 노무현, 그리고 그의 꿈도 지켜주지 못한 박종태·이상림·양희성·이성수·한대성·윤용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