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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연구소 웹진 '분권과 혁신' 유시민장관 인터뷰(4월 게재)

강산21 2009. 5. 4. 11:18

대학 강단에 선 유시민 전 장관과의 인터뷰
  2009년 3월 13일 오후 1시
경북대 c 카페
지난 18대 총선에서 우리는 대구 수성구 을에 출마한 낯익은 이름 하나와 조우했다. 참여정부 시절, 정권의 숱한 방패막이 노릇을 했던 전 보건복지부 장관 유시민이었다. 자신을 두 번이나 국회의원에 연임시킨 지역구 고양에서가 아니라, 한나라당의 텃밭이라고도 할 수 있는 고향 대구에서 그는, 무소속으로 출사표를 던졌다. ‘대구남자 유시민’이라는, 호적등본을 그대로 옮겨 온 듯한 선거문구도 내걸었다. 그리고 낙선했다. 비한나라당 후보로서 32%라는 상당한 지지율을 얻어내긴 했지만, 본인의 말을 인용하자면 '딱 떨어질 만 한' 표 차이였다. 그런 그가 돌아왔다. 지난 학기에 이어 경북대에서 교양수업 ‘생활과 경제’를 강의하며 일주일에 한 번씩 대구에 내려오고 있다. 대구남자 유시민이고 싶었던 소망을 거부당한 이 곳으로 다시 발길을 돌린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는 무엇이 그를 재차 대구로 이끌었는지 궁금했다. 또한 학생들과 같이 공부하고 글 쓰면서 느끼는 생각을 들어보고 싶기도 했다. 보건복지부 장관에서 다시 '시민'의 신분으로 되돌아 온, 유시민을 만났다.
 


 

 

공직에 있으시다가 오랜만에 강단에 오르셨습니다. 지난 학기에 이어 이번 학기 강의에도 많은 학생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요. 간단한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지난 학기와 비슷한 교양수업을 이번 학기에도 맡았습니다. 사실 다른 과목을 하는 게 맞는데, 지난 학기로는 수요충족이 안 되어서요. 수요충족이 되면 다른 내용을 강의하고 싶어요. 이번에는 수강인원을 100명쯤 줄여서 300여명의 학생을 상대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대로 수업을 하려면 수업인원이 100명 정도 되는 게 좋겠지요. 강의인원을 점차적으로 줄여나갈 생각입니다. 처음 강의를 시작했을 때는 학생들이 저를 신기해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많이 익숙해진 것 같아요. 강의가 있을 때마다 지금 살고 있는 파주에서 여기까지 내려오고 있습니다. 매화나 개나리가 피어있는 것을 보면 대구는 봄이 빨리 시작되는 고장이라는 것을 느낍니다.

 

 

학교에서의 행정직함은 어떻게 되십니까. 저희가 어떤 호칭으로 불러드려야 할까요?

 

시간강사 아닐까요? 소속은 기초교육원입니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만큼 교수라는 호칭이 가장 자연스러울 것 같네요.

강의료가 통장에 입금되는 것을 보면 직함을 알 수 있습니다(웃음). 경북대에는 비정규직 노조가 있어서 시간강사대신 외래교수라고 부릅니다.

그러면 외래교수가 맞겠네요.

 

 

유시민 교수님의 명함을 보면 '지식소매상'이란 직함이 있습니다. 혹시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과 관련이 있는지요?

소매자와 직접 만나서 재화를 유통시키는 사람을 소매상이라고 합니다. 지식은 학자나 전문가끼리 일대일로 교환되거나, 학회나 저널과 같은 공간에서 최초로 유통됩니다. 그 다음으로 좀 더 대중화된 매체인 인터넷이나 칼럼을 통해 최종소비자인 일반인들에게 전달되지요. 지식소매상은 지식의 최종 유통자라는 의미로 10여 년 전부터 사용해온 직함입니다. 공직에 있을 때를 제외하면 쭉 사용하고 있습니다.

 

명함을 보면 이메일 주소가 'saulheim'입니다. 그 뜻은 무엇입니까?

 

독일에서 유학할 때, 제가 살던 동네 이름입니다.

 

 

오랜만에 강단에 서면서, 특별히 경북대를 선택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지난 선거유세를 할 때 기자와 인터뷰를 하면서, 떨어지면 경북대에서 강의라도 할까, 라는 말을 지나가듯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기사화 되었더군요. 그 후에 정말로 낙선을 하고, 그 '낙선공약'을 지키기 위해 여기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대구시민과의 약속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지금은 경북대에 있지만 꼭 여기가 아니라 다른 곳에서 좋은 조건을 제시하면 거기로 갈 수도 있습니다(웃음).

 

 

경북대는 대구/경북지역에서 상당한 기득권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수도권과의 차별로 인한 열등감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이에 대한 유시민 교수님의 생각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제가 학교 다닐 때는 공부 잘하고 집도 잘살면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에 갔습니다. 공부는 잘하지만 집이 가난하면 경북대로 갔어요. 그 때에 비하면 경북대의 위상이 많이 떨어졌지요. 그러나 그것은 경북대 뿐만이 아니라 지난 30년간 이어져 온 대구의 몰락이기도 합니다. 발전이 정체된 지역에서는 유독 성공한 사람들이 과거에 배출되었다, 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성공한 사람들이 지금 여기 살고 있다, 라는 말이 자주 나와야 발전적이 지역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오늘날과 같은 지식정보화 시대에서는 창의적/창조적인 사람들이 어디 살고 있느냐에 따라 지역의 성패가 좌우됩니다. 대구는 그런 부분이 많이 부족하지요. 그것이 바로 대구의 침체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장기하와 얼굴들'이라는 밴드가 요즘 인기가 많지요. 서울에서는 홍대나 신촌, 강남에 가면 이들의 공연을 쉽게 접할 수 있지만, 대구에서는 요원한 일입니다. 한국은 지방자치 기반과 역사가 취약하기 때문에 경제지리학적/문화지리학적으로 지방이 소외되는 현상이 유독 심합니다. 대구가 젊은이들에게 흡입력이 부족한 도시이기도 하고요. 저는 초/중/고를 대구에서 나왔고, 본가는 지금도 중동에 있습니다. 하지만 대구 특유의 분위기, 그 말 많으면 공산당이라고 모는 분위기 때문에(웃음), 어떻게든 여기에서 도망치려고 했었습니다.

 

 

'장기하와 얼굴들'을 언급하셔서 드리는 질문인데, 좋아하는 문화장르가 있으신지요?

 

영화 보러 다니는 걸 좋아합니다. 얼마 전에는 <체인질링>, <워낭소리>를 봤습니다. 창작뮤지컬도 좋아합니다. 조용필 공연은 좋아하지만 오페라나 클래식은 지루하더군요(웃음).

 

 

대구에서 출마를 하고 낙선을 했습니다. 다시 대구에서 무언가 이루고 싶으신 생각은 없으십니까?

 

반드시 대구에서 뭔가를 해내고야 말겠다, 라는 생각은 없습니다. 정치를 하다 보면 대구의 동문회, 향우회, 종친회 등에서 많은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선거자금을 보내 주시기도 하고요. 그런데 제가 그런 모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요. 제 성향이 대구라는 지역분위기와 좀 맞지 않는 것 같아요. 지금 여기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건, 정치적인 이유가 아니라,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낙선공약이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주권자가 최고입니다. 대구시민들이 원치 않으셨기 때문에 제가 떨어졌겠지요. 그리고 낙선 후에는 일 년 정도 입 다물고 있는 게 도리입니다(웃음). 지금은 그런 시기입니다.

 

 

과거의 학생운동이 다분히 정치적/역사적 맥락에서 이루어졌다면, 최근의 학생운동은 분위기가 많이 유연해졌습니다. 이렇게 바뀐 대학문화에 대한 유시민 교수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제가 학교 다닐 때는 대학문화라는 것 자체가 없었어요. 이 쪽에는 금서를 읽은 무리들이 있고, 저 쪽에는 고고팅같은 파티에 다니던 무리들이 있는 양분화 된 시절이었습니다. 그것도 일종의 문화라고 할 수는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외국의 68혁명, 히피문화, 반전운동 등과 같은 거대한 변화의 흐름과는 동떨어진 황폐한 시기였습니다. 지금은 훨씬 개인적인 문화로 바뀌었지요. 시대가 바뀌었고, 문화양식도 다채로워졌습니다. 변화는 중요합니다. 변화는 예측불가능하지요. 그리고 스스로 설명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변화는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변하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해요. 그게 문제입니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람이 똑같다는 말은 욕이에요(웃음). 사람은 변해야하고, 시대도 변해야 합니다.

 

 

요즘은 고등학교보다 대학에서 더 많이 공부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학문공부가 아니라 취업공부의 의미인데요. 이런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취업경쟁이 굉장히 치열해졌지요. 저희 때는 대충 학교 다니다가 학점 모자라면 교수님한테 구걸하기도 해서 별 어려움 없이 취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때에 비해 훨씬 불리한 시대지요. 이것은 기성세대의 잘못이 크다고 봅니다. 기성세대가 그런 사회를 만들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 잘못을 아이들이 짊어지고 있어요. 아이들이 시대의 십자가를 지고 있는 것입니다.

 

 

스타교수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학생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종강 때 싸인 받고 사진 찍는 정도입니다. 그냥 공부만 하는 분위기에요. 아이들이 많이 자제하죠.

저희 인터뷰팀 대부분이 싸인 받고 사진도 찍으려고 준비해왔는데, 갑자기 부끄러워지네요.

하하, 그렇습니다. 끝나고 다 해드리겠습니다.

 

 

최근 『후불제 민주주의』라는 책을 출간하셨습니다. '후불제'라는 단어가 특히 인상적인데요. 이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기존의 저서들과는 달리 이번 책에서 특별히 헌법을 다루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우리나라는 외래의 것을 그대로 베껴서 헌법을 처음 들여왔습니다. 헌법이 있기는 하나 우리 것은 아니었지요. 그래서 4. 19, 6. 10 항쟁 등을 통해 그 사회적 비용을 지불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민주주의는 후불제입니다. 헌법의 가치를 실현시키기 위한 대가를 치루고 있는 것입니다. 헌법에 대한 책은 10여 년 전부터 기획했어요. 정치에 입문하면서 집필을 못하고 있다가 지금에서야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1부는 원래 기획한 내용을 쓰고, 2부는 정부에 있을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구성했습니다. 헌법은 보편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오랫동안 생각해왔습니다.

 

우리 사회를 이끌어 나가는 건 정치나 경제가 아니라 법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법은 사회를 끌고 나가지 못합니다. 법은 사회를 지키는 것이므로 본질적으로 보수일 수밖에 없어요.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것은 무엇보다 욕망입니다. 그 욕망이 지금의 정부를 세웠습니다.

공부는 언제 하십니까?

 

강의할 때 빼고는 늘 연구하고 책을 씁니다. 저는 지식의 최종소매상 즉, 유통업자입니다. 샐러리맨이 물건을 팔 듯 생계를 위해 책을 씁니다. 강의만으로는 생계가 불가능해요. 놀러가고 싶어도, 낚시가고 싶어도 참고 글을 써요. <100분 토론> 진행할 때도 근근이 먹고 사는 정도였지요. 주된 수입원은 글입니다.

 

 

과거에 토론방송을 진행하기도 하셨습니다. 대구에 계시면서 여기 사람들이 유독 말을 잘 못한다고 느낀 적은 없으십니까?

 

그런 생각은 고정관념입니다. 대구 말투가 매끄럽지 못해서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네요.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질문 잘하는 사람이 학교나 회사를 이끌어 가는 주체가 됩니다. 질문하는 사람을 키워야 되요. 그런데 대구경북은 질문을 막는 분위기가 강합니다. 말 잘하면 공산당이라고 하잖아요. 정치는 사실 말로 하는 건데, 이 지역은 말로 하는 걸 싫어하고 힘으로 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얼마만큼의 대가를 더 지불해야 할까요?

 

알 수 없습니다. 국민이 정치를 겪은 만큼 민주주의는 발전하겠지요. 지금의 정치상황은 국민의 수준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힘으로 밀어붙여도 그것이 용인되는 분위기이기에 가능한 것이죠. 또한 권력자가 문화에 관심도 없을 뿐더러 무지하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그렇지만 현재의 이러한 경험은 스스로를 발전시키는 동력이 되겠지요. 경험은 가장 좋은 스승입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십니까?

 

더 좋은 책을 쓰고 싶습니다.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책을 쓰고 싶어요. 한 꼭지, 한 꼭지마다 느낌 좋은 책 말입니다.

 

 

다음 책의 집필주제를 여쭤 봐도 될까요?

 

그건 영업기밀이기 때문에 말씀드릴 수 없네요(모두 웃음). 지금은 고객의 취향을 알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오랜 시간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구사회연구소 홈페이지 펌

(http://www.tiss.re.kr/webzine/web/92/web.php?target_url=sub3_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