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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회의 기적' 이룬 EBS '지식채널e' 5분이 주는 메시지는…

강산21 2009. 3. 4. 13:32

'500회의 기적' 이룬 EBS '지식채널e' 5분이 주는 메시지는…

기사입력

2009-03-03 18:22 

 

짧지만 긴 여운… ‘우리시대의 비망록’

“5분. 50번 눈을 깜빡이고 75번 호흡하는 시간.

에이즈에 걸린 어린이 5명이 생명을 잃고 한국에서 1명이 자살을 시도하는 시간.

그리고 어느 사형수에게 주어진 마지막 순간. 기적적으로 풀려난 사형수는 죽음의 순간 느꼈던 시간의 소중함을 ‘죄와 벌’ 등의 작품으로 승화.

도스토옙스키의 인생을 뒤바꾼 시간. 5분.”

5분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5분간 우리는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5분 동안 감각적인 영상으로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한국교육방송(EBS)의 간판 프로그램 ‘지식채널e’가 최근 500회를 넘겼다. ‘지식채널e’는 아름다운 영상 때문에 ‘영상시의 향연’이란 수식어가 붙기도 하고 뒤통수를 치는 듯 날 선 메시지로 ‘우리시대 비망록’이라 불리기도 했다. 5분이 우리에게 남긴 메시지는 뭘까.

◇‘지식채널e’ 방영분 중 인터넷 다시보기에서 가장 많은 조회 수를 기록한 ‘17년 후’(2008년 5월 12일).
◆간결한 메시지, 긴 여운=2005년 9월 방송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지식채널e’는 시청자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짤막한 교양프로그램쯤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지식채널e’는 오히려 내레이션 없이 영상과 자막만으로 화두를 던지고 시청자의 궁금증을 유발했다.

우리가 즐겨먹는 커피와 초콜릿, 지구인의 축제인 월드컵의 이면에 가려진 저개발국 아동 노예들의 눈물을 보여주고(‘커피 한 잔의 이야기’, ‘착한 초콜릿’, ‘축구공 경제학’ 등), 개발 논리에 희생된 사람들의 고통(‘잊혀진 대한민국 1부-철거민’, ‘아웃 오브 유즈’)과 해고 통보도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받는 비정규직의 설움(‘3년’)을 그렸다.

◇과다한 사교육으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소외된 초등학생을 조명, 이슈가 됐던 ‘2007, 대한민국에서 초딩으로 산다는 것’(2007년 4월 30일).
또 과도한 사교육에 숨막혀하는 초등학생들의 현실(‘2007, 대한민국에서 초딩으로 산다는 것’, ‘공부하는 아이’)이나 치솟는 등록금과 취업난에 시달리는 청춘의 비애(‘대한민국에서 20대로 산다는 것은’)도 다시금 돌아보게 했다. 화제를 모았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박지성’편 역시 박지성이 축구선수로서는 왜소한 체구와 평발이라는 악조건 속에 최고의 선수가 되기까지의 노력을 조명해 잔잔한 감동을 일으켰다.

◇박지성의 울퉁불퉁한 발을 보여주며 평발의 박지성이 프리미어리거가 되기까지의 노력을 조명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박지성’(2005년 11월 28일).
EBS 제공
첫 회부터 지난해 8월까지 ‘지식채널e’를 맡았던 김진혁 PD는 “우리 사회의 고정관념이나 편견, 왜곡된 정보의 이면에 사람들이 잘 모르는 팩트(사실)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기획했다”며 “어떤 관점이나 지식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 화두를 던져주고 시청자가 스스로 판단하게 하기 위해 내레이션을 없앴다”고 설명했다.

입소문이 나면서 인터넷 다시보기 조회 수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방영분을 모아 만든 단행본 시리즈 1∼3권은 지금까지 30만권이나 팔렸고, 일부 중·고교에선 논술교재로도 사용하고 있다. 최근엔 시리즈 4권과 함께 방송에 삽입된 음악을 모은 컴필레이션 음반까지 나왔다.

특히 내레이션 없이 감각적인 영상과 절제된 자막으로 구성된 방송 포맷은 광고계에도 유행처럼 번져 얼마 전 김연아의 영상이 담긴 ‘지식채널h’가 화제를 모았다.

지금까지 가장 많은 사람이 찾아보고 가장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은 영국 광우병 문제를 다룬 ‘17년 후’로, 9만3118건의 조회 수를 기록했다. 청와대에서 ‘관심’(?)을 보이는 바람에 편집실에서 빛을 보지 못할 뻔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전파를 탔고, 예상대로 반응은 뜨거웠다.

이후에도 나치 독일 선전장관 괴벨스 이야기를 통해 정권의 미디어 장악 음모와 폐해를 그린 ‘괴벨스의 입’, 한미 FTA 타결이 농가에 미치는 영향을 단적으로 보여준 ‘명품 한우’ 등 민감한 사회 이슈를 과감하게 다뤘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인사로 제작진이 교체되고 프로그램 폐지 논란마저 일면서 고비를 맞기도 했다.

◆5분 영상의 성공비결=‘지식채널e’가 가진 5분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프로그램 제작진은 우선 형식의 신선함을 꼽는다. 김현우 PD는 “다소 무겁고 복잡한 주제를 소프트하게 전달하는 형식과 내용이 결합된 것 같다”며 “내레이션 없이 집중하고 긴장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을 5분으로 잡은 것이 주효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같은 ‘지식채널e’의 포맷은 캐나다 온타리오 방송의 ‘매터스’(Matters)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매터스’는 메인 프로그램 사이사이에 짤막한 정보를 주기도 하고 자사 프로그램을 예고하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지식채널e’는 5분짜리 방송이 메인이 되어버렸고, EBS의 명실상부한 간판 프로그램으로 떠올랐다.

‘지식채널e’의 감동과 메시지가 더욱 강렬해지는 데 기여한 ‘반전’도 빼놓을 수 없다. 우리에게 익숙한 뉴스나 이미지를 보여준 뒤 검은 영상 바탕에 ‘그리고…’ ‘그러나…’라는 자막이 나온다. 그 다음 이어지는 영상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음을, 진실로 믿었던 것이 진실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문을 갖게 한다.

익숙한 정보나 사실에 의문을 갖게 하는 힘이 바로 ‘지식채널e’의 저력이다.

‘지식채널e’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9시45분과 0시5분에 방송된다.

김수미 기자 leol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