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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인 세 번째 병역 거부 권순욱, 그는 왜 전과자의 길을 가는가?

강산21 2009. 1. 31. 18:37

'예수 따르겠다'며 병역거부 선언한 청년
[다시 쓰는 병역거부 이야기 ①]개신교인 세 번째 병역 거부 권순욱, 그는 왜 전과자의 길을 가는가?
입력 : 2009년 01월 29일 (목) 22:29:06 [조회수 : 667] 김은석 ( 기자에게 메일보내기

국방부는 지난해 12월 23일, 2009년부터 시행할 예정이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제 도입을 무기한 보류한다고 발표했다. 여론조사 결과 대체복무를 반대하는 의견이 68%로 나와 아직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이유다. 이로써 국방부는 대체복무제를 도입하겠다는 2007년 결정과 지난해 5월 유엔인권이사회에서 국회에 대체복무제 도입 법안을 제출하겠다는 약속 모두 뒤집었다.

인권·사회단체들은 국방부의 발표에 반발하고 나섰다. 대체복무 찬성 비율이 높았던 여론조사 결과를 언급하며 예정대로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라는 게 주된 목소리다. 정부가 국제 사회의 인권 흐름에 역주행한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개신교 안에서도 국방부의 결정에 대한 논평이 나왔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회장 김삼환)와 기독교사회책임(대표 서경석)은 약속대로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한국기독교군선교연합회(이사장 곽선희 목사)는 국방부의 대체복무제 보류 결정을 환영했다.

2002년부터 이어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와 '대체복무제'에 관한 논의가 원점으로 돌아간 시점에서 기독교 신앙의 관점으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문제를 재조명한다. (편집자주)

신학생 출신으로 개신교 교회에서 전도사 생활을 했던 한 청년이 지난해 11월 병역거부를 선언했다.

훈련소로 향해야 할 입영일에 권순욱 씨(29)는 국방부 앞으로 갔다. 예수를 따라 사회적 약자와 함께 살기 위해, 인간의 폭력성을 부추기며 억압적이고 획일화된 사고를 주입하는 군대를 거부하겠노라고 그는 세상에 외쳤다. 개신교인 중 세 번째 병역거부 선언이었다.

판자촌에 교회를 세우고 싶었던 권 씨는 2002년 감리교신학대학교(총장 김홍기)에 입학해 4년간 신학을 공부했다. 3년간 전도사로 교회에서 일도 했다. 역사적 예수에 대한 관심은 커갔지만, 개인 구원에 치우쳐 있는 교회의 모습에는 자꾸 실망했다. 총학생회와 장애인 교육 단체 민들레야학에서 활동하며 폭압적이고 불평등한 사회에 맞서 약자의 편에서 그들과 함께 살아야겠다는 확신은 깊어졌다.

   
 
  ▲ 권순욱 씨(29)는 예수를 좇아 사회적 약자의 편에서 살기로 한 이상 병역거부는 자신의 운명이라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대학생이 된 그의 눈에 군대는 인간을 획일화하고 권위주의적이고 억압적인 의식을 주입하는 곳으로 보였다. 시위 현장에서 시민과 장애인을 짓밟는 전·의경의 비인간적인 모습을 목격하면서 군대에 대한 그의 거부감은 더욱 강해졌다.

세상의 모든 전쟁이 멈추고 군대가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권 씨. 그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삶을 선택한 이상, 병역거부의 길을 걷는 것은 자신의 운명이라고 말한다. 권 씨는 병무청의 고소로 현재 인천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다음은 권순욱 씨와의 인터뷰 요약문이다.

어떻게 병역거부를 결정했는가.

어려서부터 폭력적인 것을 싫어했다. 대학에 들어가 군대가 사람의 폭력성을 키운다는 것을 알게 됐다. 2002년부터 병역거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현재는 민들레 야학이라는 장애인 단체의 활동가이고 사회당 당원이다. 정치 신념에 따른 문제이기도 했지만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예수의 삶과 사상이다. 예수는 십자가를 짊어지면서 세상의 권력지향적인 모습과 권위주의적인 논리를 타파하고 사회적 약자들에게 해방의 길을 보여줬다.

나도 사회적 약자의 길을 걸으며 가진 자들의 논리에 저항하는 삶을 살려고 한다.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가진 자들의 논리는 갖지 못한 이들을 사회적 약자로 만들었다. 장애인과 여성, 성적 소수자와 빈민, 노동자와 농민들이 가진 자들의 권력 앞에 고통 받고 있다. 나는 이런 현실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개성은 인정되지 않고 인간을 획일화하고 권위주의적인 계급 질서를 주입하는 군대를 거부할 수밖에 없다. 

국방부가 지난해 말 대체복무제 실시 계획을 백지화했다. 예정대로 진행했으면 대체복무를 할 수 있었을 텐데.

국가의 인권의식이 거꾸로 가고 있다. 병역거부자들이 교도소밖에 선택할 수 없도록 하는 건 말이 안 된다. 중국과 대립하는 대만도 2000년부터 대체복무를 도입했다.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면 주로 복지시설이나 병원 등에서 복무하는 것으로 안다. 장애인 시설의 비리와 인권 문제 등을 많이 알게 됐고 장애인을 시설에서 빼내는 탈 시설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문제가 많은 복지 시설을 유지하는 데 대체복무를 활용하면 안 된다.

대체복무제를 도입한다고 했을 때 청원서를 낼까 생각해봤다. 복지 시설뿐 아니라 법인이나 비영리기관으로 등록한 장애인 단체에서 일할 수 있다면 좋겠다. 정부 쪽에서는 복무가 소홀해질 수 있다며 반대할 것이다. 그러나 대체복무제를 사회 유익을 위해 활용하는 대안을 만드는 것도 국가의 몫이다.

1년 6개월간 수감 생활을 하게 될지 모른다. 두렵지 않나.

남들이 군대에 가기 싫어하는 만큼, 아니 그보다 더 교도소에 가고 싶지 않다. 총을 들지 않을 순 있지만, 생활면에서 군대보다 더 무서운 곳 같다. 사람들이 종종 '군대와 교도소 중 왜 교도소를 선택했나'라고 묻는다. 나는 결코 그 둘 중 하나를 선택한 게 아니다. 신념에 따라 군대를 거부한 것이다. 국가가 나의 거부권을 인정해주지 않고 교도소에 들어가라고 집어넣으려는 것이다. 1년 6개월이란 시간을 교도소에서 보낼지 모른다는 생각하면 두렵고 떨릴 수밖에 없다.

전과자로 살아가는 게 부담스럽지 않나.

어차피 평생 활동가로 살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전과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장애인 활동이나 사회 운동하면서 전과를 남길 일이 더 생길지도 모르기 때문에 전혀 부담은 없다. 남들처럼 평범한 직장생활하며 사는 건 생각해보지 않았다.

군대가 폭력성을 키우는 곳이란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

대학 시절, 평택 대추리에서 미군기지 이전 반대 시위에 참가했다. 군인들이 시위대를 진압했다. 내 또래 젊은 군인들이 웃으면서 사람들을 군홧발로 짓밟는 모습을 봤다. 도저히 이성적 판단을 하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비인간적으로 명령에 복종하고 충성할 뿐이었다. 군대 안에서 얼마나 인격을 무시하면 저런 식으로 사람을 짓밟을 수 있을까. 군대가 사람을 미치게 하는 곳이란 생각을 했다.

장애인 단체가 집회할 때도 마찬가지다. 장애인들은 시민사회가 인정하는 사회적 약자다. 전·의경은 이들마저도 구타했다. 지난해 촛불집회 때도 마찬가지다. 시민을 폭력적으로 진압하면서 어떻게 웃을 수가 있나. 군대의 억압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모순이 저런 모습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한다. 군대란 조직이 존재해선 안 된다.

군대가 사라지면 안보 문제는 어떡하나.

군대가 국가 안보 위기감을 조성한다. 군대에서는 전쟁을 대비해 훈련하는데 정말 필요 없는 훈련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누구도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전쟁을 왜 가정해놓고 훈련하나. 전쟁을 막으려는 노력을 더 기울일 순 없는 건가.

역사 속에서 전쟁은 힘이 비등한 관계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강자가 약자를 짓밟는 형식으로 반복됐다. 더 강해지고 약자를 짓밟아 자국의 이익을 확장하려는 욕망 때문에 전쟁이 끊어지지 않았다. 군대는 국가의 욕망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반대로 전쟁이란 게 있기 때문에 군대를 유지하고 불필요한 훈련도 반복한다. 군대는 전쟁 위기를 이유로 계급문화를 만들어 비이성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의식을 주입한다.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과 북이 분단되고 대치하는 상황이다. 많은 이들이 대한민국의 특수성을 이유로 국방의 의무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벗어난다면 군대를 없애는 데 동의할 것인가라고. 국가는 통일되든 안 되든 군대를 계속 유지할 것이다. 특권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대다수의 힘없는 국민은 계속 희생해야만 할 것이다.

실제로 전쟁이 일어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자꾸 그런 가정을 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런 질문이 국가 안보 이데올로기를 끊임없이 양산한다. 왜 막을 수 있는 상황을 자꾸 가정하는가. 설사 전쟁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총을 들지는 않을 것이다. 총과 총이 맞서면 모두에게 아픈 현실이 된다. 내 나라, 내 가족만 아픈 게 아니라 상대방의 나라와 가족도 아플 것이다. 그런 상황 자체를 반대한다.

가족들의 반대도 심했을 거 같다.

처음엔 무슨 말을 해도 설득이 안 됐다. 특히 누나가 굉장히 심하게 반대했다. 지금까지도 반대한다. 아버지는 최근에 와서 내 결정을 인정해주셨다. 같이 살면서 장애인 운동하는 모습을 보셨기 때문에 병역거부도 하나의 사회 운동으로 봐달라고 말씀드렸다. 내 활동의 방향성을 반대하시진 않는다. 교도소를 가게 될지 모르고 위험한 요소가 있기 때문에 걱정하실 뿐이다.

   
 
  ▲ 지난해 11월 11일 국방부 앞에서 권순욱 씨가 병역거부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전쟁없는세상(www.withoutwar.org) 홈페이지 갈무리  
 

감리교신학대를 3년 넘게 다녔다. 목회자를 꿈꿨던 신학생이 병역거부를 하기까지 연결고리가 있을 거 같다.

경제·정치·사회 모든 영역에서 모든 사람이 차별과 억압 속에 살아간다. 대학 시절, 역사적 예수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려고 몸 바친 예수에 대한 관심이었다. 예수는 모두가 평등하고 평화롭게 사는 세상을 이야기했다. 사회적 약자와 늘 함께하고 그들의 처지에서 목소리를 냈다. 정치·종교 권력자에게 대항하면서 마지막 순간까지 그들에게 굽히지 않고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삶. '정말 사람은 저렇게 살아야 하지 않나'라고 생각하게 됐다.

신학대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소위 말하는 '홀리한' 학생이었다. 산에 올라가서 나무뿌리 잡고 일주일간 금식기도도 해봤다. 신학대에 들어가서 내가 가진 신앙이 가짜였다는 걸 깨달았다. 맹목적인 신앙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3년 동안 전도사 생활을 했다. 예수의 삶과 사상은 오늘날 교회의 모습과 너무 달랐다. 뭐든 목사들이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는 구조였다. 많은 이들이 목회를 하지만, 교회를 찾는 사람들에게 기독교적 가르침을 바르게 전달하지 않았다. '예수천당 불신지옥'으로 압축되는 메시지만을 반복할 뿐이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질문할 수밖에 없었다. 현장에서 활동하고 싶었다. 총학생회 활동 중 본의 아니게 학교에서 제적을 당하고 아는 선배를 따라 민들레 야학에서 장애인 운동을 시작했다. 이곳에서 살면서 가장 즐겁고 행복한 순간을 경험했다. 병역거부에 대한 생각도 더 구체화했다. 병역거부는 꼭 병역 문제에만 국한한 게 아니라, 내 활동은 물론 사회 전반적인 문제와 깊이 연관한다고 생각했다.

어떤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하나.

장애인 문제의 핵심은 군대가 병역의 의무를 부과하는 '신체 건강한 남성'의 규정과 일맥상통한다. '신체 건강한'이란 획일적인 기준과 사고가 우리 사회를 만들었다.

내가 활동하는 단체는 회원 대부분이 최중증장애인이다. 사회적 기준으로 볼 때 그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신체를 지녔다. 하지만 그들 역시 다양한 개성과 꿈을 가진 평범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들의 꿈과 개성은 무시당하고 사회에서 비정상인으로 낙인 찍혀 시설이나 골방 등에 버려진 채 사회에서 배제되고 있다.

장애인은 사회적 약자로서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에서 배제된 이들이다. 사회는 끊임없이 기준을 만들어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고 그 기준을 따르는 사람을 획일적으로 양성한다. 대신 기준에 미달된 사람은 배제하고 낙오시킨다. 군대는 사회를 획일화하고 차별적 구조를 만들어내는 곳이다.

그런 의미에서 병역거부는 내 활동의 연장선이다. 많은 사람이 군대 다녀와서 남들처럼 살아도 되지 않느냐고 말한다. 나에게 있어서 군대를 다녀오고 난 다음 다시 활동가로서 사는 것은 회피일 뿐이다. 개인적인 병역거부 선언과 수감 생활에서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운동을 이어가 한국 사회에 병역 문제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

 

   
  ▲ 지난해 11월 11일 기자회견 현장에서 소견을 발표하는 권순욱 씨. ⓒ전쟁없는세상 홈페이지 (www.withoutwar.org) 갈무리  

 

최종편집 : 2009년 01월 31일 (토) 09:55: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