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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정부 ‘5대 무시’에 남·북관계 파탄 위기

강산21 2008. 11. 27. 11:24

MB 정부 ‘5대 무시’에 남·북관계 파탄 위기
합의·상대·실천·원칙·정세 아랑곳 않는 ‘독선’
남북 협력 10년 ‘공든 탑’ 9개월만에 ‘와르르’
한겨레  이제훈 기자

» 개성공단 화물열차가 25일 북측 판문역을 떠나 남측 도라역에 도착하고 있다. 파주/김진수 기자 jsk@hani.co.kr
2000년 6월 첫 남북 정상회담 이래 어렵사리 일궈온 남북 협력과 신뢰가 이명박 정부 출범 9개월 만에 무너지고 있다. 이를 두고 이 대통령과 핵심 참모들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간 북한에 끌려다니던 잘못된 남북관계를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나온 불가피한 조정기’로 치부한다. “기다리는 것도 때로는 전략”이라는 이 대통령의 ‘지침’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다수 전문가들은 현 정부가 대북 정책에서 상대방과의 약속이나 기존 원칙, 정세 변화 등을 무시하고 도그마에 빠진 것이 남북 불신과 갈등의 악순환을 불러온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1 합의 무시, 6·15-10·4선언 거부 관계악화 시발점

남북관계 악화의 시발점이자 핵심 원인은 이명박 정부의 ‘6·15 공동선언과 10·4 정상선언’ 무시다. 이 대통령은 3월26일 통일부의 업무보고 때 “가장 중요한 남북한 정신은 1991년에 체결된 기본합의서”라고 강조하며, 두 정상선언은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정부는 7월 싱가포르 아세안지역포럼(ARF) 땐 의장성명에서 10·4 정상선언과 관련한 문구를 빼버리는 무리수를 뒀다. 북쪽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0월10일 발표된 담화에서 6·15 및 10·4 선언에 대한 “입장과 태도는 북과 남의 화합과 대결, 통일과 분열을 가르는 시금석”이라고 규정했다.

 

2 상대 무시, 선제타격 발언·삐라…북 자극 잇따라

올해 들어 북쪽의 대남 강경조처 앞에는 예외 없이 북쪽을 자극할 수밖에 없는 남쪽의 ‘도발적 무시’가 있었다. 김태영 합참의장의 대북 선제타격 발언(3월26일)이 나오자, 북쪽은 경협협의사무소 당국자 철수(3월27일), ‘남측 당국자들의 군사분계선 통과 전면 차단’(3월29일) 등으로 응수했다. 최근엔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이상설과 관련한 남쪽 당국자들의 ‘급변사태’ 언급,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삐라) 살포, 이 대통령의 ‘자유민주체제 통일’ 발언,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 참여 등이 잇따르자, 북쪽은 개성관광 중단 등의 ‘11·24 조처’로 맞대응했다.

3 실천 무시, ‘인도적 지원’ 등 실천없이 말만 앞서

이 대통령 등은 ‘진정성’을 거듭 강조하지만, 말을 넘어서는 행동이 없었다. 옥수수 5만t 등 대북 인도적 지원은 ‘달라면 주겠다’며 몇달째 실행에 옮기지 않고 있다. 북쪽의 핵신고서 제출(6월26일)과 영변 냉각탑 폭파(6월27일), 미국의 대북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발효(10월11일) 등 북핵 문제에 진전이 이뤄지고 있는데도, 핵문제에 진전이 있으면 경협에 적극 나서겠다던 이 대통령의 약속은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4 원칙 무시, 대북정책 정경분리 원칙마저 깨뜨려

이명박 정부는 ‘원칙 있는 대북정책’을 강조하지만, 실상은 ‘무원칙’하다는 게 다수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노태우 정부 이래(김영삼 정부 제외)로 남쪽 정부는 ‘정경 분리’의 원칙을 일관되게 강조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 구상’은 핵문제에 경협을 건 정경 연계 정책으로, 기존 정경 분리 원칙에서 벗어났다.

 

5 정세 무시, 미 대북대화 주창에도 ‘마이웨이’ 고수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직접대화를 포함한 적극적인 대북정책을 공언하는 등 한반도 정세에 큰 변화가 오고 있지만, 이 대통령과 핵심 참모들은 ‘한-미 공조에 이상 없다’ ‘뭘 바꾸라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더불어 한반도 문제의 당사국인 한국의 입지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와 함께 금강산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7월11일), 김정일 위원장 와병설 등 예기치 못한 돌발상황 발생 때 국내 보수세력을 의식한 정부의 ‘정치적 행보’가 악재를 위기로 키우고 있다. 정부는 ‘관광사업 즉각 중단 및 정부 조사단 금강산 현지 파견 방침 천명’ ‘급변사태 반공개 언급’ 등으로 대응해, 북한을 필요 이상으로 자극했다.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