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과 시론모음

[야!한국사회] 전교조, 정면돌파 못하면 죽는다! / 이범

강산21 2008. 9. 25. 23:40

[야!한국사회] 전교조, 정면돌파 못하면 죽는다! / 이범
야!한국사회
한겨레

» 이범 교육평론가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전교조에 대한 마녀사냥이 숨가쁘다. 이 사냥은 올해 가을에서 겨울 사이 교원평가 관련 법률안이 국회에 상정되면서 최고조에 이를 것이다. 연말께 자사고(기존의 ‘자립형’ 사립고보다 설립·운영 요건을 완화한 ‘자율형’ 사립고) 관련 법률이 상정되면서 이명박식 교육정책에 대한 반대여론이 다시 들끓을 텐데, 마침 교원평가는 이러한 반대진영을 효율적으로 분열시킬 수 있는 정권의 필승 카드이기도 하다. 이런 점을 우려하는 사람들은 전교조에 교원평가를 받아들일 것을 조언하기도 한다.

그런데 문제는 현재 전교조 내부에서, 교원평가 문제에 대하여 정면돌파를 시도할 리더십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전교조 내의 주요 정파들이 모두 지난 수년 동안 교원평가를 최고의 죄악으로 치부해 왔으며, 이 문제로 위원장이 사퇴한 사건도 있었고 최근에는 대변인이 사직하기도 했다. 따라서 지금 새삼스럽게 교원평가를 받아들이자는 제안이 내부에서 차마 나오기 어려운 것이다.

 

게다가 전교조의 핵심 세력은 여전히 진정성과 전투성을 보존하고 있지만, 전교조가 합법화된 지 10년이 되어가는 동안 일반 노조원들의 ‘농도’는 점차 엷어져 갔다. 전교조에 일반적인 노동조합으로서의 역할을 기대하고 가입한 경우가 상당수를 차지하는 것이다. 전교조 소속원 가운데 한나라당 지지자가 15%에 이른다는 통계는 이런 사정을 반영한다. 이 같은 일반 노조원들이 자신의 이해관계를 침해할 교원평가안을 용인하겠다고 나서는 정파를 지지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 더구나 공교롭게도 2년 주기의 전교조 위원장 선거가 올해 12월에 치러진다.

 

전교조의 내부의 이런 변화는 2000년대 초반부터 전교조가 대학 서열화와 학벌사회에 대한 문제제기를 전면에 내세운 노선 및 담론상의 변화와 얽혀 있다. 대학 서열화와 학벌사회에 대한 문제제기 자체는 타당한 것이었지만, 그 와중에 전교조의 전통적인 참교육-학교개혁론이 뒷전으로 빠져버린 것이 결정적인 문제였다. 학교개혁은 어떤 방식으로건 기존 교원의 이해관계를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우선순위의 변동은 전교조의 ‘일반적 조합화’와 상관관계가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 같은 사정은 일반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상황과 닮은 점이 있다. 노조내 전투적 그룹들이 선명성 경쟁을 하면서 결과적으로 조합원들의 이해관계를 가장 충실하게 보호하는 지도부가 당선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모범답안은 강력한 진보정당의 정책역량과 지도력을 통해서인데, 지난 진보정당 원내진출 1기의 경험은 이러한 바람직한 활로를 당분간 기대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결국 지금 전교조는 거의 ‘정당’급에 해당하는 정치적 감각과 결단을 필요로 한다. 전교조로서는 매우 난감하고 억울한 상황이지만, 정면돌파하지 못한다면 전교조의 미래는 매우 어둡다. 단기적으로는 ‘학생에 의한 평가’를 받아들이면서, 아울러 교육관료들에 의해 좌우되어 온 교사·교장의 임용·승진·재교육 방식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에 나서야 한다. 이를 통해 전교조에 우호적이었던 시민사회세력들과의 연대의 끈을 강화하면서 오히려 공세적 대응을 선도해야 한다. 중기적으로는 위원장 선거 주기를 2년에서 4년으로 늘리고, 기능을 잃어버린 지 오래된 전교조의 참교육연구소에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투자를 하여 정책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전교조내 주요 정파들 간의 대타협이 필수적이다.

 

이것이 가능할 것인가? 냉정한 이성은 불가능하다는 예상으로 기운다. 하지만 뜨거운 가슴은 제발 이것이 가능하기를 바란다.

이범 교육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