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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징벌적 세금” / 여현호

강산21 2008. 9. 25. 23:33

[유레카] “징벌적 세금” / 여현호
유레카
한겨레  여현호 기자

» 여현호 논설위원
종부세를 두고 말들이 많지만, 소득세도 도입 때는 그 못지않았다.

영국에서 소득세는 애초 한시적인 전쟁세였다. 15세기 백년전쟁 이후 여러 전쟁에서 전비 충당을 위해 도입됐지만, 그때마다 전쟁이 끝나면 철폐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1815년 워털루 전쟁 뒤의 소득세 연장 법안은 “소득세는 매우 억압적이고 개인의 안정을 파괴하기 때문에 비상시에만 부과돼야 한다”는 반대론 탓에 폐기됐다.

1842년 도입된 세율 3%의 평시 소득세도 정부 부채가 청산되는 대로 폐지될 예정이었다. 당시엔 소득세가 개인의 소득자료를 너무 많이 요구하기 때문에 영구화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 소득세는 1874년에야 영구적 세금이 됐다.

 

미국에서 1894년 도입된 소득세의 세율은 지금 기준으로 보면 턱없이 낮은 2%로, 연간 소득 4천달러 이상이 대상이었다. 그에 해당하는 인구는 2% 정도였다. 이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일부 의원들은 소득세를 “부자에게 내리는 벌칙”이라고 비난했고, 어떤 이들은 “사회주의적”이라고 몰아붙였다. 연방대법원은 위헌 결정을 내렸다. 소득세는 1913년 헌법 개정을 통해 비로소 정상화됐다.

 

프랑스에서도 1871년부터 1898년 사이에 소득세 도입 제안이 100여 건 이상 의회에 제출됐지만, 소득세법이 최종적으로 상원을 통과한 것은 1914년이었다. 소득세 반대론자들은 지극히 사적인 문제에 국가가 월권적으로 개입하는, 일종의 종교재판과 같다고 봤다. 나중에 대통령이 된 레몽 푸앵카레는 소득세를 “사회주의의 시녀”라고 비난했다. 지금은 당연시되는 누진과세 제도는 “사회주의 혁명의 씨앗”으로 지목됐다.

 

그런 공격에도 소득세는 지금 그나마 가장 나은 과세 제도로 자리를 잡았다. 대통령 참모까지 앞장서 “징벌적 세금”이라며 무력화하려 드는 종부세도 그렇게 시련을 이겨낼 수 있을까.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