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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스타 박태환은 소속사의 꼭두각시(?)

강산21 2008. 9. 6. 11:32

수영스타 박태환은 소속사의 꼭두각시(?)

[임종률의 스포츠레터]

[ 2008-09-06 10:00:00 ]

CBS 체육부 임종률 기자

어제는 세종문화회관을 찾았습니다. 베이징올림픽에서 활약했던 서울시 소속 대표선수들의 환영식이 열린 때문이지요. 단순한 환영식이었지만 그래도 20명 가까운 취재진이 몰렸습니다.

베이징을 빛낸 스타급 선수들이 참석하기 때문이었지요. 한국수영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금메달을 따낸 박태환(단국대)을 비롯해 여자펜싱 은메달리스트 남현희(서울시청), 남녀태권도 금메달리스트 차동민과 황경선, 여자핸드볼 배민희(이상 한체대), 배드민턴 남자복식 황지만(강남구청) 등이었습니다.

당연히 취재진의 관심은 최고스타 박태환에 쏠렸겠지요. 하지만 행사 시작시간인 낮 12시가 다 돼서도 박태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박태환이 오네, 못 오네" 안절부절하며 수근거리는 서울시 관계자들의 말이 들리더군요. 최고스타가 오지 않으면 행사의 무게도 떨어지는 탓입니다.

다행히 박태환은 12시가 조금 넘은 시각 도착했고 서둘러 환영식 주최자인 오세훈 서울시장 옆자리에 앉았습니다. 박태환이 오자마자 행사가 시작됐습니다. 이후 올림픽 영광의 순간을 담은 동영상 시청과 오세훈 시장의 환영사 등이 이어졌습니다.

순조롭게 진행되던 행사에 예정에 없는 순서가 돌출됐습니다. 다름아닌 오시장에게 박태환과 남현희가 선수들을 대표해 감사의 기념품을 전달한다는 것입니다. 사회자는 "계획에 없던 것인데 선수들이 직접 준비를 해왔다고 해서 급하게 마련된 순서"라고 했습니다.


한데 박태환 선수의 얼굴이 순간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더군요. 고개를 갸우뚱하던 박태환은 미리 준비했다는 자신의 사진으로 구성된 기념우표를 옆에서 받더니 오시장에게 전했습니다. 한편 남현희 선수는 자신있는 표정으로 자신의 사인이 들어간 올림픽 당시 경기복을 내놨습니다.

급조된 순서와 박태환의 황당한 표정까지 다분히 기자로서 냄새(?)가 나는 대목입니다. 물어보니 서울시 관계자들은 황급히 손사래를 쳤습니다. "우리 쪽에선 전혀 몰랐던 일이었다"는 것인데 적어도 시장을 위한 충성심의 발로(?)는 아니었겠죠.

그렇다면 박태환은 정말 기념품을 미리 준비했던 것일까요. 그러나 아쉽게도 본인의 입을 통해선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박태환의 소속사인 수영용품업체 스피도 측에서 언로를 완전히 차단한 까닭입니다. 취재진과 박태환이 지척에 있었지만 한 마디라도 건넬라 치면 스피도 관계자가 황급히 "죄송하다"며 막아서더군요.(이 자리에 서울시장보다 더 대단한 인물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 것은 왜일까요?)

사실 박태환이 선물을 직접 준비했는지 여부가 뭐가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이런저런 행사에 불려다니느라 바쁠 텐데 아마도 다른 분이 준비를 하셨다 해도 이해할 만한 일입니다. 이를테면 가십거리에 불과한 사안이겠죠.


하지만 이런 간단한 질문조차 철통처럼 막아댄다면 문제는 달라지지 않을까요. 스피도 관계자는 "오늘은 행사를 위해서 온 것이지 인터뷰를 위해서 온 게 아니다"면서 말 한 마디조차 통제했습니다. 기념품 증정 순서 소식에 대한 박태환의 황당한 표정에 관한 답은 정작 본인이 아닌 "당연히 미리 준비를 해온 것"이라는 관계자의 입에서 나왔습니다.

가십이 아닌 수영과 관련된 본격적인 질문도 박태환 본인에게는 전달도 되지 않았습니다. "이날 서울시에서 포상금을 받은 박태환이 전국체전에 서울시 소속으로 출전하느냐"는 질문에 예의 그 관계자가 "포상금을 받았지만 이는 지난해까지 서울 소속으로 체전에 참가했던 보상"이라면서 "향후 계획은 본인이 말을 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하더군요.(참 충실한 대변인입니다.)

갑자기 박태환은 행사에 몸만 왔지 입과 생각은 다른 사람에게 맡겼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직접 준비했다는 기념품 얘기에 황당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고 당장 코앞으로 다가온 대회에 대한 입장을 타인의 입을 빌려야 하다니요. '어린애도 아닌데 꼭두각시, 혹은 허수아비가 아닌 다음에야...' 라는 생각은 저만의 것이었을까요?



물론 지나친 언론의 취재열기는 선수에게 분명히 스트레스일 겁니다. 또 선수가 인터뷰를 마다하고 운동에 전념하겠다는 걸 말릴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날은 중요한 대회를 앞둔 훈련장도 아니었습니다. 포상금을 받는 환영식 행사에 온 것입니다. 그 관계자의 말대로라면 박태환은 행사는 치르고 가겠지만 말은 한 마디도 할 수 없다는 겁니다.

박태환은 전국민적인 스타입니다. 광고 출연료만 해도 천문학적인 액수입니다. 베이징올림픽 후 귀국길에 수백만원 어치의 쇼핑을 했다는 얘기도 들려옵니다.

현재보다 미래의 성취가 더 기대되는 선수인 만큼 앞으로도 놀라운 성과를 낼 게 분명합니다. 또 계속해서 각종 행사와 CF에도 모습을 비칠 것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궁금합니다. 박태환 선수가 앞으로도 자신도 몰랐던 본인의 일이 옆에서 진행되며 또 언제까지 행사에서 입을 닫고 '인간마이크'를 자처하는 이가 나올지 말입니다.


airjr@c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