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현실그대로

“정연주에 배임죄 적용은 법적 불가능성에 대한 도전”

강산21 2008. 8. 13. 15:13
[데일리서프 하승주 기자] 결국 KBS 정연주 사장은 해임처분을 받았고, 검찰은 이틀째 정사장을 상대로 이른바 '배임죄; 혐의에 대한 조사를 벌이고 있다.

정사장은 현재 묵비권을 행사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배임죄 혐의를 둘러싼 법조계의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다.

지난 6월 13일 한겨레신문은 '법원의 조정권고가 있었다면 배임죄는 성립될 수 없다'는 서울 중앙지검의 한 검사의 발언을 인용했다. 이 발언은 현재 정연주 수사의 본질적 한계를 핵심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다.

'배임죄'란 간단히 말해 '의무에 위반하는 죄'를 뜻한다. 형법에서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삼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행위라고 정의하고 있다.

정사장의 고발인은 "항소심에서 승소가 확실해 1990억원을 돌려받을 수 있는데도 정 사장이 경영 적자를 메워 사장을 계속하려는 욕심 때문에 의도적으로 조정을 하도록 해 556억원만 돌려받아 회사에 손실을 끼쳤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즉, 소송을 계속하여 판결까지 봐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정을 받아들인 것이 바로 회사에 대한 배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에는 크게 3가지 쟁점이 대립되고 있다.

첫째 승소가 확실한 소송이 과연 가능하느냐는 점이다.

이론적으로 '승소가 확실한 소송'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법조계의 일반적인 견해다. 판결이란, 판사가 자유심증에 따라 주장과 증거를 판단하여 내리는 평가이기 때문에, '확실한 소송'이란 있을 수가 없다. 이에 대해 객관적으로 승소가 유력시되는 재판은 있을 수 있으며, 그런 예상과 달리 함부로 조정에 응한 것은 의무위반이라는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당시 소송에 관해 KBS는 법무법인 율촌으로부터, 국세청은 서울고검과 법무법인 김앤장으로부터 조정안을 수용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권고를 받은 바 있다. 또 KBS이사를 지낸 바 있는 김상희 민주당 의원은 '2심에서 패소할 수 있다는 법률전문가들의 조언이 있어 법원 중재안을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양 소송담당자들의 법률자문기관이 모두 조정안을 받아들이라는 의견을 냈다면 이는 승소를 확신할 수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만약 KBS의 조정 수용결정이 배임죄에 해당한다면, 이를 조언한 변호사나 법무법인 등도 마찬가지로 배임죄의 공동정범 또는 종범이 된다는 얘기다.

둘째로는 법원의 조정권고가 있었다는 점이다.

고발인은 '승소가 확실'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판사가 KBS에게 승소판결을 내리는게 확실해 보였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바로 그 재판의 판사가 KBS에게 엄청난 손해가 미치는 조정을 권고했다.

그런 논리대로라면 정연주 사장의 배임행위에 대해 판사가 교사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말 안된다.

셋째로는 경영판단에 대해 형사처벌하는 것의 문제점이다.

당시 KBS가 조정권고를 받아들인 것은 정연주 사장이 독단적으로 내린 결론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실무회의를 통한 의견 수렴, 법무법인의 법률자문, 이사회 보고와 KBS감사의 일상감사, KBS의 공식적인 심의의결기구인 경영회의 등의 절차를 모두 거쳤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하지만 경영판단에까지 형사처벌의 칼날을 들이댈 경우, 이명박 대통령이 특별사면까지 해가면서 북돋고 있는 기업인들의 경영의욕을 심각하게 제한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정치권이나 법조계에서는 "법적으로 적용 불가능한 수사를 정치적으로 밀어 붙이는 일"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