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이슈·현안

박영준 비서관, 언론의 ‘취재낚시’에 넘어갔다

강산21 2008. 6. 8. 16:55
박영준 비서관, 언론의 ‘취재낚시’에 넘어갔다
[분석] 박 비서관과 중앙SUNDAY의 공방 “인터뷰 했나, 안했나”
입력 :2008-06-08 14:15:00  
▲ 정두언 의원과 박영준 비서관 인터뷰를 다룬 8일자 중앙Sunday 인터넷판 캡처 화면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 정두언 의원이 권력 내부의 추악한 파워게임을 조선일보를 통해 폭로했고, 이에 맞서 이 대통령의 또다른 복심(腹心)이자 청와대내 실세중의 실세로 꼽히는 박영준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의 반격이 중앙일보 일요판인 중앙SUNDAY를 통해 터져나왔다.

사실 정 의원의 말도 사석이라면 몰라도 활자화될 것이 뻔한 기자와의 만남에서 그런 내부의 내밀한 갈등을 얘기했다는 것도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긴 하다. 그러나 정 의원의 신분은 국회의원이고, 공식적으로는 청와대에 속한 사람이 아니다. 그런만큼 해서 안될 말을 했긴 했으나 정치인으로서 어느 정도 자유도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100% 납득불능인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청와대 내부에서 비서관의 직함을 갖고 있는 박 비서관이 그런 식으로 반격했다는 것은 전혀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란 게 여권 주변의 대체적 의견. 아무리 화가 나고 속이 부글부글 끓어 오른다 해도 원래부터 청와대맨의 입은 지퍼를 채워고 있어야 한다는 게 정설. 즉 정말로 해서는 안될 말을 박 비서관은 뱉어놓고야 만 것이었다.

실제로 정 의원이 익명으로 얘기했던 사람 가운데 두 핵심이 박 비서관에 의해 밝혀진 것이나 다름없다. 청와대 내부 사정에 밝은 사람들이야 정 의원이 지목한 사람이 누구이겠거니 속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고 스스로 밝힌다는 것은 또다른 문제를 야기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뿐 아니다. 박 비서관은 "정 의원이 ‘강부자’ ‘고소영’ 내각을 내 책임으로 돌리면서 박미석 전 청와대 보건복지수석을 거론한 대목은 인격살인에 해당한다. 비열한 짓이다"고 밝혔다. 이것은 거꾸로 이른바 '오빠청탁'의 당사자가 박 전 수석이란 점을 간접적으로 밝히는 일이어서 매우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배용수 청와대 부대변인은 8일 브리핑을 통해, “박 비서관은 중앙SUNDAY와 인터뷰한 적도 없으며, 이같은 내용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언급한 일도 없어서 황당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청와대의 해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중앙SUNDAY는 없는 사실을 기사화한 셈이다. 구체적으로 언급한 일도 없는 사실들이 기사화됐다는 얘기다. 과연 이런 일이 가능할까. 언론계 관행에 비춰보면 이런 일은 충분히 가능하다.

일단 중앙Sunday의 기자가 박 비서관이 하지 않은 말을 기사화할 리는 없다는 관측이 일반적이다. 다만 박 비서관이 기자와 전화통화를 하면서 그 내용을 기사화하지 말라고 요청했을 수는 있다. 중앙Sunday의 기사 내용에도 그런 말이 나온다.

그(박영준 비서관)는 “정 의원의 말은 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내가 조목조목 반박하는 인터뷰를 하면 대통령에게 누가 된다”며 말을 아꼈다. 그는 자신의 말이 기사화되는 것을 거부했다. 그러나 중앙SUNDAY는 사안의 중요성에 비추어 박 비서관 발언의 일부를 공개한다.

박 비서관은 이런 인터뷰 형식으로 기사가 나갈 것으로 예측하지 못했을 수 있다. 청와대 실세인 자신의 부탁을 기자가 감히 거절하리라고 보지 않았을 수도 있다. 물론 이건 언론계의 치열한 보도경쟁을 무시한, 매우 순진한 관측일 뿐이다.

▲ 정두언 의원 미니홈피에서 
이명박 정권 내부의 추악한 파워게임에 불을 지른 당사자는 정두언 의원이다. 보도로 불을 지른 쪽은 조선일보다. 조선일보와 신문업계의 1,2위를 다투고 있는 중앙일보로서는 비상이 걸렸을 것이다. 당연히 중앙SUNDAY를 통해 정두언 의원을 만났을 것이고, 이미 조선일보를 통해 할말 다 우려먹은 정 의원으로서는 중앙SUNDAY의 취재요청을 거절할 리 없었을 것이다.

중앙SUNDAY로서는 한걸음 더 나갈 필요가 있다. 이미 정 의원 인터뷰는 조선일보가 한발 먼저 우려먹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보도가 나왔을 때 정 의원이 지목했던 '음해와 이간질의 명수'가 누군지 청와대를 취재하는 언론계 기자들은 모르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직접 쓸 수가 없었기 때문에 쓰지 못했을 뿐이었다.

중앙SUNDAY 기자는 한걸음 더 나갔다. 이런 저런 정황을 종합하면 박 비서관과 전화통화를 한 것으로 추정된다. 정치인이나 관료들은 전화통화를 할 때 그 통화가 간단한 전화인터뷰 형식으로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대개는 모르고 있다.박 비서관도 그랬을 것이다.

통화 처음에는 할말없다, 모른다는 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란 일단 통화를 시도하면 완전히 나 몰라라 하기는 어렵다. 그 과정에서 중앙SUNDAY에 보도된 내용들이 흘러나왔으리라 추정된다. 박 비서관은 노파심에서 "오늘 통화한 내용은 절대로 오프더레코드(비보도)를 지켜줘야 한다"고 얘기했을 것이다.

그 결과가 배용수 청와대 부대변인의 언급으로 나온 것이다. 즉 인터뷰한 적도 없고, 구체적으로 언급한 일도 없어서 황당하다는 반응 말이다. 실제로 박 비서관은 황당했을 것이다.

노무현 정권 당시 실세였던 모 의원은 "기자들과 통화하면 전혀 그런 의도로 얘기하지 않은 말들도 자기 입맛에 맞춰 정권을 비난하는 기사의 도구로 쓰인 일이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실토한 적이 있다. 결국 박 비서관도 바로 그러한 기자들의 '낚시'에 걸린 것이다.

기자들이 명예훼손과 관련된 민감한 사안들을 보도할 때는 절대로 말하지 않은 사실을 쓰지는 않는다. 아마도 중앙SUNDAY 기자는 이럴 때를 대비해 전화내용을 미리 녹음이라도 해두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결국 박영준 비서관은 중앙SUNDAY의 '취재 낚시'에 넘어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정두언 의원이 익명으로 밝혔던 인물들에 대한 사실 확인을 해준 셈이 되고 말았다.

최병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