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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대학가는 비싼 등록금 논쟁으로 시끄럽다. 서울에서 유학중인 3명의 지역출신 학생들이 성균관대 교내에 나붙은 플래카드를 지나치고 있다. 정우용기자 vin@msnet.co.kr |
혹자는 이렇게 말했다. 상아탑은 이제 모골탑(母骨塔)이라고. 등록금 1천만원 시대를 맞았고 물가는 살인적이다. 특히 서울지역에 자녀를 유학보낸 부모들의 경제적 고통은 더욱 심하다. 학생들도 괴롭고 부모에게 미안하다. 어렵사리 공부를 마친다고 해서 장래가 보장되는 현실도 아니다. 서울에서 유학중인 지방 출신 대학생들의 모습을 현장 취재했다.
◆부모님, 대학 다녀서 죄송합니다
‘어머니, 아버지 비싼 등록금 내고 학교 다녀서 죄송합니다. ㅠㅠ’
잠시 따뜻했던 봄기운 뒤에 찾아온 늦겨울 바람이 매섭게 불던 지난 24일 오후 서울 ㅅ대학교. 학생회 측이 내건 플래카드가 길게 줄을 이었다. ‘5년간 등록금 77만원 인상!’ ‘등록금 뻥튀기에 내 가슴도 뻥~’
다음날 찾아가 본 신촌의 ㅇ대학교에서도 비슷한 풍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십수개의 플래카드가 학생들의 감성을 자극하고 있었다. ‘우리는 88만원 세대, 재단은 천만원 세대’ ‘치솟는 등록금… 대학 다녀 죄송합니다’ 등등. 인근 ㅇ여대 앞도 마찬가지였다.
대학등록금 1천만원 시대다. 대학 등록금 인상은 폭주 기관차 같다. 딸의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자살을 하는 어머니도 생겼다. 한 아버지는 “등록금 고지서가 저승사자 같다”고 절규했다. 치솟는 물가 때문에 서울로 유학간 지방 학생들의 사정은 더욱 어렵다. 1년에 등록금의 1.5배 정도 생활비가 더 들어가기 때문이다.
경주 출신의 김종구(가명·18·ㅅ대 사회과학부 1년)군은 450만원(입학금 90만원 포함)을 등록금으로 냈다. 매달 하숙비로 36만원을 낸다. 2학기 등록금 360만원에 매달 받는 용돈 30만원을 합치면 1년에 김군 밑으로 들어가는 돈은 1천600만원이 넘는다. 김군은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1주일에 세번, 하루에 5시간씩 카레 전문점에서 일한다. 그만큼 공부할 시간을 빼앗긴다.
김군의 부모는 “고1인 동생도 대학생이 되면 학비 부담이 너무 많다”며 “동생 대입 시기에 맞춰서 군대에 가라”고 했다. “좋은 대학 가서 취직 잘 해야겠다”는 생각에 서울로 왔지만 "집에 가고 싶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과외·아르바이트도 여의치 않다
군 제대 후 지난 2학기에 복학한 박준석(23·동국대 국제통상학과 2년)씨의 등록금은 340만원. 경상계열이라 그나마 싼 편이지만 “이공계는 500만원이 넘은 곳도 있다”고 그는 귀띔했다. 친구들 중에도 학자금 대출을 받거나 아예 휴학한 사람도 있다. 친척집에서 통학하고 용돈·교통비도 넉넉한 편이지만 집에 눈치가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박씨는 “군대 가기 전에는 아르바이트 필요성을 못 느꼈는데 요즘에는 안 할 수가 없는 입장”이라고 했다.
이예진(20·서강대 국어국문과 2년)씨도 마찬가지. 아버지 회사에서 등록금 전액을 지원해 주기에 남들보다는 마음이 편하다. 그러나 고3인 남동생이 대학에 입학하면 사정은 달라진다. 하숙비 40만원에 생활비 30만원을 매달 보내주던 부모도 "이제 2학년이 됐으니 직접 용돈을 마련하라"고 했다. “처음부터 2학년이 되면 일을 시작하려고 했지만 막상 구하려고 보니 과외 자리는 인맥이 없어 구하기가 마땅치 않다. 늘 용돈이 빠듯한데 이제 가게 서빙일을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김은지(20·고려대 사학과 2년)씨도 부담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아버지가 “너 공부하는 데 돈 많이 들어간다”며 농담조로 얘기하지만 심적인 부담 때문에 공부를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 김씨의 이번 학기 등록금은 350만원. 고시텔 월세가 40만~50만원이다. “유명한 사립대가 아니면 대구 소재 대학교에 진학하기로 약속했었다. 열심히 공부해서 진학한만큼 용돈이 충분하지는 않아도 공부에 전념하고 있다”고 했다.
대구경북등록금 네트워크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박인규 대구참여연대 간사는 “지나친 자율화로 인해 대학 등록금 문제가 통제 불가능해져서 등록금 인상률이 매우 높아졌다. 가파르게 상승하는 등록금 제어 장치로 '등록금 인상 상한제'를 시행하거나 대출 문턱을 낮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