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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 간 주정뱅이(음주는 삶의 일부) - 러시아

강산21 2008. 3. 2. 00:48
러시아인은 유난스럽게도 보드카를 좋아한다. 영하 20도를 웃도는 겨울 길거리에서 술에 취해 자다가 객사한 사람에 대한 신문기사는 겨울철 해외 토픽의 단골 메뉴일 정도다. 러시아인들이 보드카를 좋아함으로써 생기는 문제는 이외에도 수없이 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보드카가 러시아의 사회에는 일어나는 모든 문제에 대해 속죄양의 역할을 떠맡고 있는 면도 있다. 특히 서구인들은 자신들이 예상치 못한 일이 러시아에서 발생하면, 그것의 원인을 러시아 사회의 문화 또는 자기들의 러시아 문화에 대한 몰이해에서 찾기보다는 손쉽게 보드카에서 찾는 경향이 있다. 최근의 예를 몇몇 살펴보자. 소련 사회의 개혁을 부르짖던 고르바초프는 개혁 초기부터 기득권층을 중심으로 하는 보수적인 세력의 조직적인 저항을 받았으며, 이는 쿠데타로 귀결되었다. 이 쿠데타는 소련 사회의 개혁이라는 대세를 거스르지 못하고 실패로 돌아가서 보수파는 몰락했다. 서구에서 높은 지지를 받던 고르바초프도 이 과정에서 몰락했는데 이는 고르바초프가 개혁 추진 과정에서 민심을 잃었고 쿠데타 당시 우유부단한 행동을 취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옐친은 모스크바 시장 재직시부터 민심을 잘 읽었고 이에 따라 처신을 잘 했다. 또한 쿠데타라는 국가적 위기 상황하에서 국회의사당을 떠나지 않았고,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불굴의 투지로 탱크처럼 버텨서 쿠데타를 무산시켰다. 이런 사실에 대해 몇몇 서방 언론들은 보수파의 쿠데타가 실패로 돌아간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몇몇 고위 책임자들이 모여서 술을 마시다가 의기투합해서 즉흥적으로 쿠데타를 모의했고, 철저한 준비 없이 술김에 이를 실행하는 바람에 실패했다. 옐친이 의사당 앞에서 탱크처럼 맞서서 쿠데타를 무산시킨 것 또한 보드카를 잔뜩 먹고 취했기 때문에 즉 제정신이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러시아인은 보드카를 매우 좋아하며 옐친도 예외가 아니다. 독일 통일 후 정상회담차 독일에 온 그는 정상회담이 끝난 후 마신 술에서 미처 깨어나지 못한 채 다음날 베를린 시의 야외 광장에서 열린 환영 연주회에 참석했다. 연주회가 무르익어갈 즈음, 그는 예정에도 없이 단상으로 올라가 지휘자의 지휘봉을 넘겨받아 음악과는 상관없이 자기 흥에 취해 지휘하였으며 이 모습은 독일 텔레비전을 통해 생방송되었다. 러시아인에게 보드카는 무엇이기에 그 중요한 국빈 방문에서도 마시지 않으면 안되었을까? 언제부터 사람들은 보드카를 짝사랑하게 되었을까?

보드카는 러시아인들만 애음하는특산의 술은 아니다. 이와 같은 종류의 술은 폴란드, 몽골, 스웨덴, 핀란드 등지에서 애음되고 있으며, 이들 각각의 나라에는 이와 관련된 나름대로의 음주문화가 형성되어 있다. 보드카가 러시아인의 술로 정착한 시기는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보드카(vodka)라는 단어는 러시아어 물(voda)에서 유래하는데, 처음으로 문헌에 나타나는 시기는 14세기경이다. 그러나 이 기록만으로 이 시기에 보드카가 어느 정도 소비되고 있었을 거라고 추측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러시아인들은 고대로부터 알코올 도수가 낮은 크바스를 일상적인 음료로 마셨으며, 종교적·개인적 축일에는 도수가 높은 벌꿀술(Miod)을 마셨다. 그리스정교를 수용한 988년을 전후해서 비잔틴과 소아시아에서 온 포도주가 각종 종교행사와 의식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그러나 이 술은 매우 비쌌기 때문에 상류층에서만 소비되었다. 그리스정교가 수용된 후에도 러시아인의 음주문화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회교 대신 그리스정교를 러시아 국교로 삼은 이유는 키예프 루시의 블라드미르 대공의 공식적인 견해에 따르면 전자가 알코올 섭취를 금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이유에서 러시아에 수용된 그리스정교는 이들의 음주문화를 별달리 변화시킬 수 없었다. 정교와 음주와의 관계는 다음의 일화가 잘 보여준다. 시골의 주정뱅이가 죽어서 천당 문을 들어서려고 하는데 사도 베드로가 그를 막고 돌려보내려고 하였다. 그러자 이 주정뱅이는 베드로에게 나는 한 모금의 술을 마실 때마다 하나님을 찬양했는데 당신은 세 번이나 그리스도를 부인하고서도 천국에 있지 않습니까?라고 면박을 주었고, 결국 주정뱅이는 천국으로 들어갈 수가 있었다고 한다. 러시아인들은 음주 행위를 죄악과는 거리가 먼 삶의 일부로 보았으며, 천국은 술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을 찬양하기만 하면 간다고 생각했다. 탄생, 세례, 결혼, 죽음, 추수감사절, 토지의 임차 계약을 맺었을 때 목동을 고용해 술을 마셨으며, 종교적 축일은 술을 실컷 마실 수 있는 음주 일이었다. 보드카라는 단어는 14세기부터 나오지만, 상표로 처음 등록된 것은 18∼19세기 사이였다. 당시 국가가 보드카의 생산을 엄격히 통제하였는데, 황제가 인가한 선술집에서만 제조·판매되었다. 여제 엘리자베스 1세 때부터 이런 독점법이 실시되었는데, 이는 황가가 안정적인 수입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역대 차르들은 독점권을 통해 막대한 수입을 올렸으며, 이 수입은 근위병과 사업을 유지하는데, 그리고 통치자금으로 사용되었다.

 

출처 : 건강 길라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