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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검 직원들이 광주 ‘5·18기념재단’이 정보공개청구를 요청한 ‘5·18광주민주화운동’ 수사기록 사본을 점검하고 있다. <경향신문> |
정보공개법은 ‘아는 사람은 잘 알지만, 모르는 사람은 전혀 모르는’ 법이다. 이 법은 논란 끝에 1996년 12월 31일 제정·공포했고, 1년간 시행이 유예된 후 1998년 1월 1일 빛을 봤다. 정보공개법은 세계에서 13번째로 제정될 정도로, 정보공개제도의 도입은 선진국에 비해 뒤처진 것은 아니다.
정보공개법이 시행되기 전에는 ‘민원신청’이라는 제도를 이용해 공공기관의 정보를 요구했다. 하지만 민원신청 후 받을 수 있는 답변은 기관 담당자의 ‘가공된’ 정보가 전부였다. 과거에는 ‘정보=권력’이었기 때문에 공공기관에서는 정보공개를 꺼려 했고, 민원신청으로 정보를 얻는다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대학생도 청구 논문 자료로 활용
하지만 정보공개법이 시행되면서 ‘정보=권력’이라는 등식이 무너졌다. 시민단체, 기자 그리고 개인까지 국민이라면 누구나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알고 싶은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행정자치부에서 펴내고 있는 ‘정보공개연차보고서’ 자료에 따르면 정보공개법이 시행된 1998년 정보공개청구 건수가 2만6338건이었고, 2005년에는 13만841건으로 늘어났다(2006년 연차보고서는 5월 17일 현재 만들어지지 않았다). 특히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정보공개청구 건수가 중앙행정기관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다는 것은 그만큼 일반화되고 있다는 증거다.
행정자치부 운영지원팀 관계자는 “초창기에는 시민단체에서 정보공개청구를 많이 이용했지만, 이제는 정착 단계여서 일반인이 많이 이용하고 있다”면서 “정보공개청구에 관한 지식이 많아져서 다양한 분야의 자료들을 요구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또한 “대학생들은 논문 작성에 필요한 공공기관의 자료를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얻는 경우도 많다”고 덧붙인다.
정보공개청구는 사회 각 분야에 큰 영향을 미쳤다. 참여연대는 정보공개법이 시행된 직후부터 정보공개사업단을 운영하면서 정보공개청구운동을 벌였다. 이 운동의 영향으로 그동안 숨어 있던 공공기관의 정보가 나오기 시작했고, 그 정보는 사회적인 이슈가 됐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판공비 내역 공개’다. 정보공개법 시행 전에는 공공기관과 자치단체장들이 사용했던 판공비의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어디에, 어떻게 쓰였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전무했다. 민원신청을 해서 받아본 자료는 부실했기 때문에, 구체적인 판공비 규모나 사용처를 알기 힘들었다.
1988년 참여연대는 당시 고건 서울시장의 판공비 내역 정보공개청구로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다. 참여연대의 정보공개청구는 예상대로 거부당했고, 그후로 4년 동안 지루한 행정소송을 벌인 끝에 대법원에서 원고승소 판결을 받았다. 공공기관장의 판공비 내역이 처음 구체적으로 공개된 것. 이후 공공기관장이나 지방자치단체장의 판공비 내역 정보공개청구는 마치 유행처럼 퍼지기 시작했다. 한국국가기록연구원 전진한 연구원은 “당시 기관장의 판공비는 연봉의 5~6배나 될 정도로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됐다”면서 “하지만 판공비 내역이 공개된 이후 판공비가 상당히 줄었다”고 설명한다.
정보공개법은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해주는 가장 기초적인 제도다. 정보공개법 시행 전에는 국민이 낸 세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었다. 오로지 정부의 발표에 의존해야만 했다. 하지만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정부의 예산이 어떻게 쓰이는지 확인, 감시할 수 있는 길이 생긴 것이다. 참여연대 투명사회팀의 이재근 팀장은 “국민이 ‘표현의 자유’나 ‘출판의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알권리’가 필요하다”면서 “정보공개청구는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켜주는 제도다”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정보공개청구는 국민이 행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 또한 정보공개청구는 행정이 투명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게 만드는 무언의 압력 역할도 하고 있다. 그리고 정보공개청구는 국민의 권익을 보호하는 안전장치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한 정보를 통해 시정과 해명 그리고 방지책을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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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 ‘오사카 시민 옴부즈만’ 사무실 칠판에 적혀 있는 ‘정보공개 평가표’. 이 칠판에는 정부기관별로 정부공개청구 건수와 진행상황, 성실도 평가 등이 적혀 있다. <경향신문> |
정부 투자기관·산하기관도 대상
정보공개청구를 요구할 수 있는 기관은 생각보다 훨씬 광범위하다. 국회, 법원, 중앙행정기관은 물론 지방자치단체가 기본적으로 속한다. 정부투자기관인 한국조폐공사, 한국관광공사, 대한주택공사, 한국토지공사 등도 정보공개청구 대상 기관에 속한다. 그리고 시설관리공단이나 지방의료원 등 지방공사와, 국민연금관리공단 등 정부산하기관, 금융감독원 등 특수법인도 대상 기관이다.
가장 눈여겨볼 점은 국가나 지자체에서 재정지원을 받는 사회복지법인과 사회복지사업을 하는 비영리법인, 그리고 각 사립학교와 유치원도 정보공개청구 대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교육기관은 여전히 정보공개청구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다. 전진한 연구원은 “사립학교에 정보공개청구를 요청해도 정보를 받을 수 있는 경우는 드물다”면서 “이런 경우에는 교육청 등 상급기관을 통해 우회적으로 정보를 얻어내는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1998년 정보공개법 시행 이후 여러 가지 허점이 드러나고 있다. 정보공개청구를 거부당했을 때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정보공개청구가 거부당하면 결정통지를 받은 날부터 30일 이내 공공기관에 ‘이의신청’이나 ‘심판청구’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의신청이나 심판청구를 거치지 않고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하지만 행정소송을 하려면 긴 시간과 돈이 필요하다는 것이 문제다. 행정소송에서 대법원 판결까지는 적어도 3~5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데, 시의성이 필요한 정보는 소송에서 이겨도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 일본의 한 시민단체가 댐건설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정보공개청구를 했는데, 댐이 건설된 이후에야 행정소송에서 승소판결을 받았다는 것이 대표적인 일화다.
거부로 인한 행정소송기간 단축해야
이재근 팀장은 “참여연대에서 2002년 공직자윤리위원회에 재산공개 자료를 정보공개청구했지만 거부당해 행정소송을 냈다. 하지만 여전히 법원에 계류 중이다”라고 어려움을 토로한다. 행정소송이 길어지면 담당 공무원 또한 인사이동으로 자리를 옮기기 때문에, 면피용으로 무조건 정보공개청구를 거부하기도 한다고 덧붙인다. 행정소송의 기간을 줄일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 할 때다.
그리고 담당 공무원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자료공개 여부가 결정된다는 것도 문제다. 한 신문사 기자가 각 정부부처에 ‘직급별 징계현황’ 정보공개청구를 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천차만별이었다. 경찰청은 대외비를 내세우고, 교육부는 비공개사항이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문화관광부, 환경부, 정보통신부 등은 직급별 통계를 인원수에 맞춰 정확하게 통보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부처 담당자들은 억울하다고 토로한다. 감사원의 행정지원실 담당자는 “정보공개청구의 가부는 해당기관에서 하는 것이다”면서 “각 기관마다 정보를 보는 측면이 다른데, 그것 때문에 자의적이라는 비판은 수긍하기 어렵다”고 대답한다.
정부공개청구가 악용되는 측면도 있다. 정보공개청구를 가장 많이 이용하는 사람들이 ‘재소자’라는 말이 있다. 정보공개청구를 할 때 수십 건을 한꺼번에 요청하거나, 방대한 양을 요구해 담당공무원이 일을 못할 정도다. 법무부 총무과의 담당자는 “한 사람이 60건을 신청하기도 하고, 정보를 공개해도 취하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한숨을 짓는다. 재소자의 노력 덕분(?)인지 법무부가 2년 연속 정보공개청구 비율 1위를 차지하기도 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전진한 연구원은 “공무원들도 업무가 많은 편이기 때문에 꼭 필요한 정보만 공개 요구하는 것이 좋다”면서 “어떤 자료가 필요한지는 기관에서 만들고 있는 문서목록을 보고 정하면 된다”고 설명한다.
온라인 ‘열린 정부’로도 청구 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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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_ 정보공개청구를 할 수 있는 ‘열린정부’ 사이트에서 정보공개청구 후 진행상황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처리상태를 보면 ‘처리중’ ‘통지완료’ ‘이송완료’ 등 진행상황이 표시되어 있다. 아래_ 열린정부 사이트의 메인 화면. |
하지만 이제는 1분이면 정보공개청구를 할 수 있다. ‘열린정부’(www.open.go.kr) 사이트 덕분이다. 열린정부는 전자정부사업의 일환으로 지난해 4월 오픈했다. 모든 정부기관과 자치단체의 정보공개업무를 간편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46억 원을 투자해 만든 ‘원스톱’ 사이트다. 정보공개청구 방법도 무척 간단하다.
사이트의 회원으로 가입한 후 로그인한다. 그리고 ‘정보공개청구’ 메뉴를 클릭하면 관련 화면이 뜬다. 화면에서 ‘청구기관’부터 선택하면 된다. 예전에는 정보공개청구 기관을 모두 방문해야 했지만, 열린정부 사이트에서 청구기관 수십 개를 한꺼번에 지정할 수 있다. 법제처, 국정홍보처, 서울 종로구, 부산 서구 등 정보공개청구를 하고 싶은 기관을 한꺼번에 지정할 수 있는 것. 원하는 부서를 선택한 후 정보내용을 작성하면 된다. ‘제목’은 타인이 볼 수 있기 때문에 간단하게 ‘정보공개청구’로 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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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정부 사이트가 오픈되기 전에 사용했던 ‘정보공개청구서류’. |
정보공개청구는 행정의 투명성을 만들고 공공기관의 행정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다. 또한 이제는 정보공개청구를 간편하게 할 수 있는 온라인 시스템도 마련했다. 정보공개청구는 국민 모두의 권리라는 사실을 기억해두자.
사회 이목을 끌었던 정보공개청구 사례
1 2005년 참여연대는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감기 환자에게 항생제 처방 과다 병의원에 대한 정보공개청구를 했다. 보건복지부는 정보공개를 거부했고, 참여연대는 행정소송을 해 원고 승소 판결을 받았다.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2006년 2월 9일 급성상기도감염(감기) 항생제 처방률 과다 병의원을 공개할 수밖에 없었다. 그후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항생제 처방률 공개 이후 요양기관 9086개소(의원 8716곳, 병원 167곳, 종합병원 120곳, 종합전문 38곳)를 상대로 처방률 변화 추이를 분석했다. 공개 이후 처방률은 2005년 대비 63.8%에서 51.4%로 12.4%가 감소했고, 항생제 처방률 감소로 보험재정은 1년 기준 약 220억 원으로 추정된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이 사례를 바탕으로 보건복지부는 주사제 처방률과 제왕절개 분만율 공개 이후의 변화 추이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정보공개청구가 국가의 재정과 국민의 건강까지 되돌아보게 만든 셈이다. 2지자체장의 판공비 내역 공개 역시 정보공개청구로 일궈낸 성과다. 1998년 참여연대는 당시 서울시장인 고건 전 총리의 판공비(업무추진비) 사용 내역과 지출증빙서류에 대해 정보공개청구를 했다. 당시 서울시와 참여연대의 행정소송의 쟁점은 3가지로 압축된다. 서울시는 ‘판공비 내역서가 4만6000여 페이지가 되니까 열람을 하라’고 요구했고, 참여연대는 정보공개청구법대로 ‘사본을 달라’고 맞섰다. 그리고 업무추진비가 사용된 가게명의 공개 여부와 업무추진비를 사용했던 장소에 함께 있었던 사람의 공개 여부였다. 서울시를 상대로 낸 행정소송은 4년 후 대법원 판결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이 났다. 승소한 내용은 4만6000여 페이지의 판공비 내역서 사본 제출이었고, 업무추진비를 사용했던 장소의 상호명과 참석한 사람의 공개는 비공개 판결을 받은 것. 이 판결은 그동안 시민단체가 판공비 지출내역 등을 모니터하려면 해당기관에 찾아가 수일에 걸쳐 일일이 그 내용을 옮겨 적어야 했던 비합리적인 불편과 부담을 해결한 사례다. 3 4대 사회보험료는 하루를 연체해도 한 달 혹은 세 달 연체료가 부과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경실련은 2007년 2월 국민연금, 고용보험, 건강보험, 산재보험의 연체요율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이와 같은 ‘비밀’을 알아낸 것. 당시 정보공개청구를 했던 경실련 시민권익센터 윤철한 부장은 “각 기관에서 정보는 바로 공개했지만 각각의 기관마다 기준이 달라서 정보를 파악하는 데 힘들었다”고 밝혔다. 정보공개청구로 밝혀진 내용을 보면 4대 사회보험의 연체금이 전기요금에 비해 최초 연체율과 최고 가산한도가 매우 높았다. 특히 전기요금은 하루 단위로 연체금을 부과하는 것과 달리 사회보험의 경우 하루를 연체해도 한 달 혹은 세 달 연체료가 부과되고 있다는 ‘비밀’이 밝혀진 셈이다. 이와 같은 사실이 밝혀진 후 여론은 대안을 요구했고, 법제처는 내년에 연체료에 대한 법을 정비할 계획이라고 알려졌다. 4시민단체가 아닌 개인이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분양이 끝난 아파트의 원가와 보상내역 공개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수원지법 행정2부는 지난 2월 15일 경기 화성시 봉담택지개발지구 내의 한 아파트 입주자협의회 운영위원이 대한주택공사를 상대로 낸 정보공개청구 거부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운영위원이 낸 정보공개청구는 아파트의 토지비, 건축비 등 분양원가 산출 내역과 택지보상내역, 건설원가 등의 자료다. 그리고 지난 1월 30일에는 광주 수완택지 주민이 한국토지공사를 상대로 낸 ‘수완지구 조성원가 공개’ 거부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이끌어냈다. 이와 같은 판례 때문에 토지공사나 대한주택공사는 분양원가나 조성원가 공개를 무조건 반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