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살람 알레이쿰'의 수난/ 한비야 우리도 전쟁을 겪어봐서 잘 알고 있다. 전쟁 최대의 피해자는 어린이와 여자라는것을. 지금 이 순간, 미국의 `응징'을 받고 있는 아프가니스탄도 예외는 아니다. 나는 1996년 초겨울 아프가니스탄 북부헤라트에 있었다. 무장한 탈레반이 거리를 활보하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사람들은 흰색 탈레반 군기만 보아도 새파랗게 질렸다. 시내 교전은끝났다지만 산 너머에서는 땅을 뒤흔들 듯한 박격포 소리가 하루 종일 그치지 않았다. 도시 외각에는 산악지방에서 온 소수민족들이거대한 난민촌을 이루고 있었다. 대부분은 아이들과 여자 그리고 숨쉬는 것조차 힘겨운 노인들이다. 식량은 물론 우물도 말라 붙은데다가 비닐천막으로는 다가올 혹독한 겨울을 넘길 수 없을 거라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팔 다리가 없는 사람이 유난히 많아 장애인촌인가 했는데 세계에서 제일지뢰가 많이 묻혀있는 곳이라 지뢰사고가 일상이란다. 아이들만이 세상 여느 아이들처럼 환호성을 지르며 뛰어 놀고 있었다. 내가`앗살람 알레이쿰'("평화를 빕니다"라는 말)이라고 오른손을 이마에 대며 이슬람식 인사를 하면, 신이 난 아이들은 `알레이쿰 앗살람'이라고목청껏 합창으로 답을 했다. 하얗게 이를 드러내며 웃는 얼굴에는 붉은 열꽃 투성이다. 이 지역에 급속히 퍼지고 있는 홍역 때문인데, 영양실조상태인 아이들에게는 이런 병도 치명적이다. 국제기구의 통계에 의하면 20년 동안의 전쟁으로 말미암아 아프간 아이들의 약 20%정도가 영양실조 상태로 태어나고 4명 중 한 명이 5살 이전에 목숨을 잃는다고 했다. 살아남은 아이들도 끊임없는 굶주림, 질병, 지뢰, 소년병징집 등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3년 동안 극심한 가뭄이 들어 구호단체의 손길 없이는 연명할 수 없는 어린이의 수가150만명에 이른다. 지금 이들의 목숨이 그야말로 바람 앞의 등불이다. 미군의 공습으로 육로 식량지원이 중단되거나 제한된 상태이기때문이다. 곧 식량이 전해지지 않으면 당장 굶어죽을 아이들이 최소한 50만명이다. 게다가 살인적인 겨울이 닥쳐오고 있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인도적 구호단체들은 미군에게 몇 주만이라도 공습을 멈추어줄 것을 호소하고 있지만 미국은 한 술 더 떠 금식기간인 라마단에도 계속할 것이라고한다. 어린이 중에서 여자아이들의 피해가 더욱 심하다. 헤라트의 난민촌에서 나는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누군가 지나가는 나를천막으로 끌어당겼다. 안에는 15살 정도의 여자아이가 혼수상태로 널브러져 있었다. 가족들은 제발 살려 달라는 표정으로 아이 치마를 들쳐 보였다.얇은 천은 시꺼먼 피와 고름 범벅이고 악취까지 진동을 했다. 외국인인 나를 의사라고 생각했다는데 여자들은 반드시 여의사에게만 보여야하는 관습때문에 이렇게 사경을 헤매는 아이를 두고도 속수무책이었다. 놀랍게도 이 여자아이는 피난길에 수 차례의 윤간을 당했단다.반군들에게는 물론 정부군들도 몹쓸 짓을 했는데 총을 든 군인들의 행패라서 가족들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단다. 난민촌에 도착하기 며칠 전 반항하는이 여자아이의 아랫도리를 군인들이 개머리판으로 마구 때려서 저렇게 초죽음으로 만들어 놓았다고 했다. 더욱 끔직한 것은 이런 부녀자강간이 주민들을 `길들이고' 군인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한 보상의 일환으로 묵인된다는 점이다. 여성의 순결을 가족의 명예이자 목숨만큼 중요하게생각하는 이슬람 문화권에서 강간이야말로 반대세력에게 불명예를 입히는 제일 `즉각적이고도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현란한 형용사나 그럴듯한 명분은 붙이지 말자. 이것이 바로 우리가 `관전'하고 있는 `정의의 전쟁'의 피할 수 없는 부산물이자실체다. 세계에서 제일 힘 센 사람들이 이 힘없는 나라 아이와 여자에게 도대체 무슨 일을 저지르고 있는 건가? 입만 열면 평화공존, 보편적인권, 어린이 보호를 외치던 그 많은 세계 지도자와 성직자, 지성인들은 다 어디에 있는가? 한비야/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오지여행가한겨레20011102
<따뜻한 세상만들기>는 작으나마마음을 나누며 따뜻함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며 만든 방입니다. 따뜻한 글을 싣고서로 좋은 글을 공유하며 자그마한 정성이라도 함께 모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이제 시작입니다. 함께 만들어 가는 열린 공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 칼럼지기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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