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어진 아이들 '안성군 교육장이 명하는 학교의 근무를 명함'이라는 극히 사무적이고 짤막한 문구에 몹시도 기뻐하며 초임근무를위해 허위허위 찾아간 학교 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작은 산골학교였다. 가는 날이 장날 이라더니,첫날부터 버스의 결행으로 한 시간반이상 걷 고 걸어 마을 어귀에 도착하고 보니,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까까머리의 사내애와 상고머리의 여자애들이 까만 고무신에 책보를등에 메고 뛰어 가는 모습이 보였다. 저애들과 같이 생활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부임인사를 하고 첫수업을 하러교실에 들어갔더니, 올망졸망한 눈동자들이 내 모 든 것을 단번에 알아내려는 듯이 여간 바쁘지 않다. 나 또한 그 애들을 바라보며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머리속이 복잡했다. 그래서 기껏 생각해 낸 것이 그 애들의 용의검사였다. "점심먹고 오교시엔 용의검사를하겠어요." 한 마디 던져놓고 별생각없이 네 시간 수업을 마쳤다.점심을 먹고 잡무 를 약간 처리하고 종소리와 함께 교실에들어와보니, 참 별난 일이 벌어 져 있었다. 약간의 소음과 함께 분명히 거기 있어야 할 아이들이 한 명 도 없는 것이었다. 이상하다 싶어 운동장을 돌아봐도 아이들의 모습은 영 찾을 수가 없었 다. '이 일을 어쩐담.' 낭패한 마음으로 교실에 돌아와보니,그때까지도 아이들은 보이지 않고텅 빈 교실에 어지러이 책과 공책만 대충 놓여 있 었다. '이럴 때 교장선생님이 교실에들어오시면 뭐라고 얘기해야 하나?'부푼 기대를 안고 부임한 근무 첫날부터 사고를 치는 교사라니, 내가 생각해 도 기가 찰노릇이었다. 도무지 초조해서 그대로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급한 마음에 창을 열고 내다보니, 멀리 냇가에 점점이 움직인는 무리들 이보였다.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다시 쳐다보니, 그것은 분명히 우리 반 이이들이었다. "애들아!" 다른 반 수업 방해는아랑곳하지 않고, 냅다 큰 소리를 질렀더니 빠른 동작으로 둑길을 뛰어오르는 아이들.... 아아, 헉헉 소리가 들리도록 내쪽을 향해달려오는 그 모습들이라니. 얼 마 후, 문을 열고 교실에 들어오는 아이들의 모습은 실로 장관이었다. 사내아이, 계집아이 할 것 없이모두 흠뻑 젖어 스물 여덟 마리의 물에 빠진 생쥐 꼴이었다. "선생님께 더러운 모습을 보일 수는 없잖아요" 나의 발령날짜가 유월 초하루였으니 아직 물에 들어가기는 이른 철이 었건만, 순진한 그애들에게 그것은 전혀 문제가 아니었다. 다만, 새로운 선생님께 치부를 보이고 싶지 않은 절박함이 더 급했던 것이다. 점심도 굶고, 부끄러움도 없이 여자 남자 섞여 얼굴이 빨개지도록힘주 어 닦았을 그들의 몸을 나는 검사할 수가 없었다. 그 애들은 이미 이 세 상 어느 누구보다 가장 깨끗한 아이들이었기때문이다. 월간 낮은 울타리 199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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