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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국민연금> ①세대 전쟁 불가피한가

강산21 2006. 2. 14. 15:57

<기로에 선 국민연금> ①세대 전쟁 불가피한가
 
[연합뉴스 2006-02-14 13:42] 
(서울=연합뉴스) 황정욱 기자 = 서울 홍제동에서 자영업을 하는 K모(43)씨. 그는 연금 얘기만 나오면 불안해 진다. 그동안 꼬박꼬박 납입해 왔는데 제대로 받을 수 있을 지 확신이 들지 않아서다.


주변에선 "나중에 연금이 고갈되면 떼인다는데..." 라는 얘기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당장 해약을 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닌데 이도 알고보니 거의 불가능하다. `꼼짝없이 걸렸구나'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정부 당국자는 TV나 신문에 나와 "연금은 국가가 보증하는 것으로 파산 사태는 있을 수 없다"고 하지만 영 믿음이 가질 않는다.

 

이처럼 국민연금은 불신에 시달리고 있다. 각종 조사에서 연금 신뢰도는 극히 저조하게 나온다. 지난 2004년 `연금 8대 의혹'이 제기될 당시 연금이 필요하다는 의견보다 불필요하다는 쪽이 더 많았을 정도였다. 이른바 `연금 무용론'이 팽배한 것이다.

 

연금에 `만족한다'는 응답이 불과 3%대에 머문 적도 있었다. 최근 들어 다소 회복됐다고는 하지만 연금에 대한 만족도는 극히 낮은 수준이다.

 

이 같은 연금 불신은 그 태생에서 기인한다. 국민연금이 국민 복지를 고려했다기 보다는 정치적 필요성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1987년 대선을 앞두고 표밭을 의식, 당시 여당인 민정당의 대선 공약으로 태동된 것이었다. 1988년 연금이 개시됐지만 보험료율은 3%, 소득대체율이 무려 70%나 됐다. 연금을 조금만 부으면 자기 소득의 70%를 노후에 받을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니, 후해도 너무 후한 연금 구조였다.

 

이후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이 두차례 조정됐지만 복지 정책의 특징인 하방경직성에 의해 보험료율은 9%, 소득대체율은 60%에 그친다.

 

당시 연금 최초 설계의 실무를 맡았던 김용문 보건사회연구원장은 이에 대해 "정치 논리가 복지 논리를 앞서간 결과"라며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정치적으로 풀려고 하면 연금 구조는 더 왜곡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현행 연금 구조대로 가면 2047년에 기금이 고갈된다. 이 때부터는 적립된 기금이 없기 때문에 보험료를 거둬서 바로 주는 형태로 바뀔 수 밖에 없다. 이것이 연금 고갈론의 핵심이다.

더욱이 우리의 경우 고령 사회를 향해 급가속 페달을 밟고 있어 기금 고갈 시기가 크게 앞당겨질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속속 발표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과 한국사회보험연구소 추계로는 2040-2042년이 된다.

 

우리의 현행 보험료율인 9%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7.5%의 절반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반면 소득대체율 60%는 일본(50%), 캐나다(25%) 등 외국보다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결국 현행 연금 구조는 덜 내고 더 받아가는 불균형적 요소가 다분한 셈이다. 그러면 이 같은 불균형은 어떻게 메워질까.

 

한마디로 정의하면 후(後) 세대 몫이다. 전(前) 세대가 적게 내고 많이 타가는 차액을 후 세대가 세금 등 어떤 형태로든 감당해 나가야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어찌보면 후 세대에서 전 세대로 `소득 강탈'이 이뤄지게 되는 셈이다.

 

통계청 분석으로는 지금은 생산가능인구 8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지만 2030년에는 2.7명이, 2050년에는 1.4명이 노인 1명을 맡게 된다. 젊은층 1명이 자기 밥그릇의 절반 가까이를 다른 노인 1명에게 내줘야 한다는 계산이다. 연금 기금이 고갈되면 당장 보험료 납부액이 30% 이상 증가하게 된다는 분석도 있다.

 

후 세대가 이에 반발할 경우 세대간 전쟁이 불가피하다. 일부 전문가는 향후 우리 사회 갈등의 핵심 진원지로 이를 주목한다.

 

국민연금은 이 밖에도 많은 허점을 안고 있다. 연금이 개시되기 전 취업 전선에서 떠나는 바람에 연금에 아예 가입조차 못한 초고령층은 물론 빈곤 등으로 인한 납부 예외자 등 연금 사각지대가 광범위하게 형성돼 있다.

 

직장-지역 가입자간 형평성 문제, 공무원 연금 등 다른 공적 연금의 상대적 우월성에 따른 박탈감 해소 등도 숙제로 남아 있다.

 

그만큼 연금 개혁이 절실하나 전조는 그다지 밝지 않다. 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지만 연금 개혁은 정권의 명운을 좌우할만큼 중대하고 국민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걸려 있는 사안으로 꼽히고 있다.

 

우리의 연금 개혁도 이 같은 덫에 걸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당장 지방선거가 목전에 있는 데다 2007년 대선, 2008년 총선 등 정치 일정이 짜여져 있다 보니 각 당의 `유권자 눈치보기'가 극심해질 수 밖에 없다. 더욱이 현재 170만명인 연금 수급자가 2008년에는 300만명으로 증가한다. 갈수록 연금 개혁이 어려워지는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다.

 

이런 사정들을 감안하면 연금 개혁은 속도감을 갖고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당초 올 2월이 연금 개혁의 1차 마지노선으로 유력했으나 지금은 지방선거 직후가 적절한 시점이라는 의견이 유력하다.

 

연금을 정부안대로 `더 내고 덜 받는' 구조로 개편하든지, 아니면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기초연금제를 채택하든지, 어떤 형태로든 모순덩어리인 기존 연금 체계에 대대적인 메스를 가해야 한다.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는 "연금 개혁은 변수가 많은 고차원 방정식인데 정치권이 표를 의식한 당리당략 차원에서만 본다면 이는 본연의 의무를 방기한 것"이라며 "연금 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