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미안하구나”
유전병 장애인 가족 ‘촉탁 살인’ 비극…복지 혜택 못받고 3대째 고통
지난 7월1일 광주 방림동. 오후 3시 케이블 TV 뉴스를 ‘듣던’ 김도영씨(58·가명)는 아들 방으로 갔다. 시력을 잃고 하반신이 마비된 김씨는 엉덩이를 바닥에 대고 엉금엉금 앉은뱅이 걸음으로 건넌방으로 갔다. 그는 악취를 맡고 방바닥을 더듬더듬 살폈다. 방안은 도배한 듯이 온통 인분 투성이었다.
아들 수형이(27·가명)도 8년 전부터 발병해 김씨와 비슷한 증상을 겪고 있다. 아내 최미옥씨(53·가명)는 오전에 과일 행상을 나가고 없었다. 식구들의 생계는 아내가 담당했다. 1급 시각·지체 장애인인 김씨는 장애인 아들의 대소변을 치우고, 방안을 세제로 다 닦느라 두세 시간을 보냈다. 함께 목욕을 하고 나자 수형이는 아버지에게 몸을 기대왔다. 아들은 장애인 복지 시설에서 4년 동안 생활하다 5월24일 가족과 함께 있겠다며 집으로 왔다.
아버지에게 기댄 수형이는 죽여 달라고 간청했다. 집에 온 이후 수형이는 ‘가족의 짐이 되기 싫다, 차라리 나가 죽겠다’며 시멘트 바닥에 등과 팔을 짓이겨 피를 철철 흘린 적도 있었다. 수형이는 마음 속으로 이미 생을 포기한 듯했다.
김씨는 자기가 죽으려고 갖고 다니던 흰색 끈을 아들 목에 감고 잡아당겼다. 그러고는 아들을 보듬어 안은 채 잠에 빠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잠에서 깬 김씨는 수의를 입히듯 수형이에게 옷을 입히고 119로 전화를 했다. 김씨는 촉탁살해 혐의로 경찰에 긴급 체포되었다. 그 때가 저녁 7시23분이었다.
이 가족의 불행은 15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김씨의 모친은 김씨와 비슷한 증상을 겪으며 70세에 숨을 거두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김씨는 유전병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불행은 잇따랐다. 김씨의 여동생이 10년 동안 비슷한 증상으로 앓다가 지난해 55세로 사망했다. 여동생의 딸은 5∼6년 동안 투병하다 4년 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딸도 같은 증세 보여 이혼당하고 요양소에
과일장수, 책 수금 외판원을 하던 김씨 가족에게도 질긴 병마가 들이닥쳤다. 48세 때 김씨가 쓰러진 이후, 큰아들(32)만 빼놓고 수형이와 딸도 비슷한 증세로 몸 져 누웠다. 수형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제과점에서 일하기도 했었지만 점점 병이 악화했다.
딸은 6∼7년 전에 발병해 이혼까지 당했다. 현재 목포 요양원에서 3년째 요양 생활을 하고 있는 딸은 아버지와 동생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모른다. 사건이 일어난 날, 최씨는 ‘보고 싶으니 요양원에 와달라’고 전화해온 딸에게 ‘수형이 때문에 못 간다’며 눈물을 흘리고 전화를 끊었다. 식구들이 잇달아 천형 같은 병마와 싸우면서도 병원에 갈 형편은 못되었다. 김씨는 병원에 가서 종합 진찰 한번 제대로 받지 못했다. 수형이는 지방 대학 종합병원에서 1주일 동안 종합 검사를 받았다. 병원측은 ‘윌슨병 추정’ ‘유전으로 인한, 이름 모를 병’이라는 두 가지 진단을 내렸다. 담당 의사는 “이런 병은 처음이다. 치료 방법이 없으니 잘 먹이고, 운동을 시키라”고 최씨에게 당부했다.
수형이는 나중에 텔레비전에서 본 윌슨병 환자 증상이 자신과 비슷하다며, 자기 병이 윌슨병이라고 여겼다. 일가족 6명이 비슷한 질병을 앓고 있는데도 정식으로 병명 확진조차 받지 못했다. 병원에 다녀온 후 한의원에 가서 한약 몇 첩 달여 먹은 것이 전부였다. 아내 최씨는 웃음을 잃고 살았다고 말한다. “차 타고 가다가 아들 또래 애만 봐도 눈물이 났다. 서울이라도 한번 가서 치료를 하고 싶은 마음이 왜 없었겠는가. 엄두가 안 났다.”
간병 끝에 남은 것은 체념과 자포자기뿐이었다. 최씨는 큰아들에 대한 걱정이 가슴에 남는다. 처가에서 이 사건을 알고서 “나중에라도 발병할지도 모르니 이혼하라”고 며느리에게 말했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7월4일 오전 10시 광주 남부경찰서. 현장 검증을 하기 전에 최씨는 면회 신청을 했다. 최씨의 손에는 속옷이 들려 있었다. 김씨와 최씨는 손을 붙잡고 눈물을 흘렸다. 혀가 말려들어 김씨의 말투는 어눌했다. “아빠, 라고 단 한번만 불렀어도 줄을 당기지 않았을 것이다. 아들은 나를 닮은 게 죄다. 차라리 그때 나도 죽을 것을….” “수형이는 다 용서하고 좋은 곳으로 편하게 갔다.” 김씨는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김씨의 혐의는 촉탁 살인이다. 자살 의향을 가진 사람으로부터 부탁을 받고 죽인 경우에는 형법 제252조 제1항의 촉탁살인죄가 적용된다. 법적으로만 따지면 1년 이상 10년 이하 징역에 처해진다. 김씨는 변호사를 선임하지 못했다. 그럴 형편이 못 되기 때문이다. 7월3일 영장실질심사에서 구속영장이 발부되었고, 7월8일 김씨는 광주교도소로 송치되었다. 광주 남부경찰서 송기옥 강력반장(53)은 “정상 참작이 되길 내심 바랐는데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내가 살고 싶어도 이제는 육체가 허락하지 않는다. 이 병이 알려지고 연구 대상이 돼 앞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동네 주민 50여명은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김씨 부자는 윌슨병 환자로 보도되었으나 병명은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았다. 일가족 6명이 10여년을 앓았지만 정확한 진단을 받을 기회조차 없었다. 경제적 이유도 있지만 희귀병을 정확하게 진단할 병원이 수도권에 몰려 있는 것도 또 다른 이유다.
병명 확인 안돼 치료 방법도 막막
서울아산병원 유한욱 박사는 “3대에 걸쳐 비슷한 질병이 나타난 점으로 보아 윌슨병이 아닐 가능성이 많다”라고 말했다. 윌슨병은 몸에 구리가 쌓이고 이로 인해 간이나 신경계에 이상이 생겨 발병한다. 콩·초콜릿·조개·버섯·견과류 등 구리가 많은 음식을 피하고 소고기·달걀 등 저구리 식품 등을 섭취하는 식이요법을 실시하고, 몸에서 구리 빼내는 약을 꾸준히 복용해야 한다.
3만5천명 중 1명이 발생하는 희귀병인 윌슨병은 열성 유전을 하기 때문에 3대에 걸쳐 발병하지는 않는다. 또한 윌슨병으로 시력을 상실하는 경우도 드물다. “가족 병력과 증상으로 볼 때 우성 유전을 하는 신경 계통 유전병일 가능성이 높다”라고 유박사는 말했다. 이 사건이 보도된 이후 윌슨병 환자 가족들이 ‘윌슨병이 매우 비참한 병으로 알려져’ 불안해 하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김씨 가족은 그동안 정부의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조그만 집 한 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국민기초생활수급대상자에서도 제외되었다. 유가족은 지난 7월3일 화장(火葬)을 치렀다. 자신을 죽여달라는 장애인 아들과 아들의 간청을 들어준 아버지. 부자는 철저히 복지 정책의 사각지대에 버려져 있었다. 수형이가 쓰던 방의 한 구석에는 기저귀가 유품처럼 남아 있다.
차형석 기자 papapipi@sisapress.com
(시사저널에서 펌)
유전병 장애인 가족 ‘촉탁 살인’ 비극…복지 혜택 못받고 3대째 고통
지난 7월1일 광주 방림동. 오후 3시 케이블 TV 뉴스를 ‘듣던’ 김도영씨(58·가명)는 아들 방으로 갔다. 시력을 잃고 하반신이 마비된 김씨는 엉덩이를 바닥에 대고 엉금엉금 앉은뱅이 걸음으로 건넌방으로 갔다. 그는 악취를 맡고 방바닥을 더듬더듬 살폈다. 방안은 도배한 듯이 온통 인분 투성이었다.
아들 수형이(27·가명)도 8년 전부터 발병해 김씨와 비슷한 증상을 겪고 있다. 아내 최미옥씨(53·가명)는 오전에 과일 행상을 나가고 없었다. 식구들의 생계는 아내가 담당했다. 1급 시각·지체 장애인인 김씨는 장애인 아들의 대소변을 치우고, 방안을 세제로 다 닦느라 두세 시간을 보냈다. 함께 목욕을 하고 나자 수형이는 아버지에게 몸을 기대왔다. 아들은 장애인 복지 시설에서 4년 동안 생활하다 5월24일 가족과 함께 있겠다며 집으로 왔다.
아버지에게 기댄 수형이는 죽여 달라고 간청했다. 집에 온 이후 수형이는 ‘가족의 짐이 되기 싫다, 차라리 나가 죽겠다’며 시멘트 바닥에 등과 팔을 짓이겨 피를 철철 흘린 적도 있었다. 수형이는 마음 속으로 이미 생을 포기한 듯했다.
김씨는 자기가 죽으려고 갖고 다니던 흰색 끈을 아들 목에 감고 잡아당겼다. 그러고는 아들을 보듬어 안은 채 잠에 빠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잠에서 깬 김씨는 수의를 입히듯 수형이에게 옷을 입히고 119로 전화를 했다. 김씨는 촉탁살해 혐의로 경찰에 긴급 체포되었다. 그 때가 저녁 7시23분이었다.
이 가족의 불행은 15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김씨의 모친은 김씨와 비슷한 증상을 겪으며 70세에 숨을 거두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김씨는 유전병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불행은 잇따랐다. 김씨의 여동생이 10년 동안 비슷한 증상으로 앓다가 지난해 55세로 사망했다. 여동생의 딸은 5∼6년 동안 투병하다 4년 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딸도 같은 증세 보여 이혼당하고 요양소에
과일장수, 책 수금 외판원을 하던 김씨 가족에게도 질긴 병마가 들이닥쳤다. 48세 때 김씨가 쓰러진 이후, 큰아들(32)만 빼놓고 수형이와 딸도 비슷한 증세로 몸 져 누웠다. 수형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제과점에서 일하기도 했었지만 점점 병이 악화했다.
딸은 6∼7년 전에 발병해 이혼까지 당했다. 현재 목포 요양원에서 3년째 요양 생활을 하고 있는 딸은 아버지와 동생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모른다. 사건이 일어난 날, 최씨는 ‘보고 싶으니 요양원에 와달라’고 전화해온 딸에게 ‘수형이 때문에 못 간다’며 눈물을 흘리고 전화를 끊었다. 식구들이 잇달아 천형 같은 병마와 싸우면서도 병원에 갈 형편은 못되었다. 김씨는 병원에 가서 종합 진찰 한번 제대로 받지 못했다. 수형이는 지방 대학 종합병원에서 1주일 동안 종합 검사를 받았다. 병원측은 ‘윌슨병 추정’ ‘유전으로 인한, 이름 모를 병’이라는 두 가지 진단을 내렸다. 담당 의사는 “이런 병은 처음이다. 치료 방법이 없으니 잘 먹이고, 운동을 시키라”고 최씨에게 당부했다.
수형이는 나중에 텔레비전에서 본 윌슨병 환자 증상이 자신과 비슷하다며, 자기 병이 윌슨병이라고 여겼다. 일가족 6명이 비슷한 질병을 앓고 있는데도 정식으로 병명 확진조차 받지 못했다. 병원에 다녀온 후 한의원에 가서 한약 몇 첩 달여 먹은 것이 전부였다. 아내 최씨는 웃음을 잃고 살았다고 말한다. “차 타고 가다가 아들 또래 애만 봐도 눈물이 났다. 서울이라도 한번 가서 치료를 하고 싶은 마음이 왜 없었겠는가. 엄두가 안 났다.”
간병 끝에 남은 것은 체념과 자포자기뿐이었다. 최씨는 큰아들에 대한 걱정이 가슴에 남는다. 처가에서 이 사건을 알고서 “나중에라도 발병할지도 모르니 이혼하라”고 며느리에게 말했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7월4일 오전 10시 광주 남부경찰서. 현장 검증을 하기 전에 최씨는 면회 신청을 했다. 최씨의 손에는 속옷이 들려 있었다. 김씨와 최씨는 손을 붙잡고 눈물을 흘렸다. 혀가 말려들어 김씨의 말투는 어눌했다. “아빠, 라고 단 한번만 불렀어도 줄을 당기지 않았을 것이다. 아들은 나를 닮은 게 죄다. 차라리 그때 나도 죽을 것을….” “수형이는 다 용서하고 좋은 곳으로 편하게 갔다.” 김씨는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김씨의 혐의는 촉탁 살인이다. 자살 의향을 가진 사람으로부터 부탁을 받고 죽인 경우에는 형법 제252조 제1항의 촉탁살인죄가 적용된다. 법적으로만 따지면 1년 이상 10년 이하 징역에 처해진다. 김씨는 변호사를 선임하지 못했다. 그럴 형편이 못 되기 때문이다. 7월3일 영장실질심사에서 구속영장이 발부되었고, 7월8일 김씨는 광주교도소로 송치되었다. 광주 남부경찰서 송기옥 강력반장(53)은 “정상 참작이 되길 내심 바랐는데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내가 살고 싶어도 이제는 육체가 허락하지 않는다. 이 병이 알려지고 연구 대상이 돼 앞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동네 주민 50여명은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김씨 부자는 윌슨병 환자로 보도되었으나 병명은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았다. 일가족 6명이 10여년을 앓았지만 정확한 진단을 받을 기회조차 없었다. 경제적 이유도 있지만 희귀병을 정확하게 진단할 병원이 수도권에 몰려 있는 것도 또 다른 이유다.
병명 확인 안돼 치료 방법도 막막
서울아산병원 유한욱 박사는 “3대에 걸쳐 비슷한 질병이 나타난 점으로 보아 윌슨병이 아닐 가능성이 많다”라고 말했다. 윌슨병은 몸에 구리가 쌓이고 이로 인해 간이나 신경계에 이상이 생겨 발병한다. 콩·초콜릿·조개·버섯·견과류 등 구리가 많은 음식을 피하고 소고기·달걀 등 저구리 식품 등을 섭취하는 식이요법을 실시하고, 몸에서 구리 빼내는 약을 꾸준히 복용해야 한다.
3만5천명 중 1명이 발생하는 희귀병인 윌슨병은 열성 유전을 하기 때문에 3대에 걸쳐 발병하지는 않는다. 또한 윌슨병으로 시력을 상실하는 경우도 드물다. “가족 병력과 증상으로 볼 때 우성 유전을 하는 신경 계통 유전병일 가능성이 높다”라고 유박사는 말했다. 이 사건이 보도된 이후 윌슨병 환자 가족들이 ‘윌슨병이 매우 비참한 병으로 알려져’ 불안해 하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김씨 가족은 그동안 정부의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조그만 집 한 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국민기초생활수급대상자에서도 제외되었다. 유가족은 지난 7월3일 화장(火葬)을 치렀다. 자신을 죽여달라는 장애인 아들과 아들의 간청을 들어준 아버지. 부자는 철저히 복지 정책의 사각지대에 버려져 있었다. 수형이가 쓰던 방의 한 구석에는 기저귀가 유품처럼 남아 있다.
차형석 기자 papapipi@sisapress.com
(시사저널에서 펌)
'따뜻한글 좋은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런 적 있지요 (0) | 2002.07.21 |
---|---|
슬픈 영상(의정부 두 소녀) (0) | 2002.07.21 |
아름다운 부부이야기 (0) | 2002.07.15 |
희망을 찾아서 (0) | 2002.07.04 |
아버지의 생일 (0) | 2002.07.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