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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생일

강산21 2002. 7. 4. 11:20
아버지의 생일

비에 젖은 아침 햇살이 콘크리트 바닥에 얼굴을 비비며 도란도란 속삭
이고 있었다. 완섭씨는 갈색 머리칼을 살랑살랑 흔들고 있는 가로수를 바라
보며 졸음에 겨운 하품을 했다. 바로 그때 음식점 출입문이 열리더니 여덟
살쯤 돼 보이는 여자아이가 어른의 손을 이끌고 느릿느릿 안으로 들어왔다.
두 사람의 너절한 행색은 한눈에 봐도 걸인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담
배 연기처럼 헝클어진 머리는 비에 젖어 있었다. 퀴퀴한 냄새가 완섭씨의
코를 찔렀다. 완섭씨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들을 향해 신경질적으로 말
했다.
"이봐요! 아직 개시도 못했으니까, 다음에 와요!" "…."
아이는 아무 말 없이 앞을 보지 못하는 아빠의 손을 이끌고 음식점 중
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완섭씨는 그때서야 그들 부녀가 음식을 먹으러
왔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식당에 오는 손님들에게 그들 부녀 때문에 불
쾌감을 줄 수는 없었다. 더욱이 돈을 못 받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음식
을 내준다는 게 완섭씨는 왠지 꺼림칙 했다.
완섭 씨가 그런 생각을 하며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에 여자아이의 가느
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어, 아저씨! 순대국 두 그릇 주세요."
"응, 알아다. 근데 얘야, 이리 좀 와볼래."
계산대에 앉아 있던 완섭씨는 손짓을 하며 아이를 자기 쪽으로 불렀다.
"미안하지만 지금은 음식을 팔 수가 없구나. 거긴 예약손님들이 앉을
자리라서 말랴."
그렇지 않아도 주눅든 아이는 주인의 말에 낯빛이 금방 시무룩해졌다.
"아저씨, 빨리 먹고 갈게요. 오늘이 우리 아빠 생일이에요."
아이는 잔뜩 움추린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다말고 여기저기 주머니를 뒤
졌다. 그리고는 비에 젖어 눅눅해진 천원자리 몇장과 한 주먹의 동전을 꺼
내 보였다.
"알았다. 그럼 최대한 빨리 먹고 나가야 한다. 그리고 말이다, 아빠하고
저쪽 끝으로 가서 앉거라. 여긴 손님들이 와서 앉을 자리니까."
"예. 아저씨, 고맙습니다."
아이는 자리로 가더니 아빠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화장실이 바
로 보이는 맨 끝자리로 아빠와 함께 가서 앉았다.
"아빠는 순대국이 제일 맛있다고 그랬잖아. 그치?" "응…."
아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소금통 대신 자신의 국밥 그릇으로 수저를 가
져갔다. 그리고는 국밥 속에 들어 있던 순대며 고기들을 떠서 아빠의 그릇
에 가득 담아주었다. 그리고 나서 소금으로 간을 맞췄다.
"아빠, 이제 됐어. 어서 먹어."
"응, 알았어. 순영이 너도 어서 먹어라. 어제 저녁도 제대로 못먹었잖
아."
"나만 못 먹었나 뭐 근데… 아저씨가 우리 빨리 먹고 가야 한댔어. 어
서 밥 떠, 아빠. 내가 김치 올려줄게.: "알았어."
아빠는 조금씩 손을 떨면서 국밥 한 수저를 떴다. 수저를 들고 있는 아
빠의 두 눈 가득히 눈물이 고여 있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완섭씨는 자신
도 모르게 마음이 뭉클해졌다. 그리고 조금 전 자기가 아이한테 했던 일에
대한 뉘우침으로 그들의 얼굴을 바라볼 수 없었다.
음식을 먹고 나서 아이는 아빠 손을 끌고 완섭씨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계산대 위에 천원짜리 넉장을 올려놓고 주머니 속에 한 움쿰
의 동전을 꺼내고 있었다.
"얘야. 그럴 필요 없다. 식사 값은 이천 원이면 되거든. 아침이라 재료
가 준비되지 않아서 국밥 속에 넣어야 할 게 많이 빠졌어. 그러니 음식값을
다 받을 수 없잖니?"
완섭씨는 미소를 지으며 아이에게 천원짜리 두 장을 다시 건네주었다.
"고맙습니다, 아저씨."
"아니다. 아까는 내가 오히려 미안했다."
완섭씨는 출입문을 나서는 아이의 주머니에 사탕 한 움큼을 넣어주었
다.
"잘 가라." "네, 안녕히 계세요."
아픔을 감추고 웃고 있는 아이의 얼굴을 완섭씨는 똑바로 바라 볼 수
없었다. 총총히 걸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는 완섭씨 눈가에도 어느새 맑
은 눈물 빛이 반짝거렸다.
<연탄길2 / 삼진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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