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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하게 골고루 닮은 아들

강산21 2002. 5. 4. 13:19
신기하게 골고루 닮은 아들

며칠 전 초등학교 2학년인 우리 집 큰 아들 산이가 학교에서 적성검사 결과표를 가져 왔다. 한달쯤 전 학교에서 어느 연구소의 용지를 가지고 검사를 한 모양인데 이제 그 결과가 나와서 가져온 것이란다. 커다란 컴퓨터 용지 두 장에 기록된 아주 복잡하고 많은 내용을 차근히 다 읽기가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었지만 사랑하는 아들의 적성이 어떤지를 알아보려는 애비의 심정은 그것을 이기고도 남았다.
기억력, 추리력, 언어능력, 계산능력, 성격, 흥미 등 검사 항목은 얼마나 많던지, 게다가 평가
한 내용들에 대한 설명은 또 얼마나 어렵던지 마치 읽어도 이해가 잘 안가는 보험약관 읽는 기분
이 들 정도였는데 마지막에 나온 정리된 내용만큼은 분명히 기억이 난다.
"지원/배려의 적성 분야에 많은 소질이 있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또한 분석력에도 비교적 높
은 적성을 보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적성분야에 대한 소질에 관심을 기울이고 게속 관찰하실 필
요가 잇습니다.
아동의 점수가 가장 높은 지원/배려 적성은 각종 사회복지단체 종사자, 종교단체 봉사자, 상
담가, 간호사 분야에 있는 사람들이 대체로 높습니다.
이러한 적성을 뒷받침하는 능력과 성격 요소를 보면, 아동은 도형변별력, 언어력 부분에서 능
력이 상대적으로 뛰어나며 규범준수, 성취력의 성격특성은 높은 반면에 공격성, 불안수준 성격특
성은 낮습니다."
난 이 결과를 보고서 무릎을 탁치며 감탄하고 즐거워했다. 참 신기하고 놀라울 따름이었다.
애비된 입장에서 자식이 어떻게 자라고 어떤 모습으로, 어떤 직업을 가지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는 바램은 다들 가지고 있기 마련이고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는데 굳이 좀 비뚤어진 부모들처
럼 강요하거나 은근히 바람을 잡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역시 우리 집 자식이 맞구나라는 좀 별스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아내는 사범대에서
교육공학을 전공하고 다시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한 바 있고 앞으로도 계속 그 방면의 공부
를 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나는 학부에서부터 대학원을 두 번째 다니는 지금까지 신학을
전공하고 있으며 현직 목사이니 우리 아이는 부모의 취향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스스
로 무엇이 되고싶다는 장래희망을 적는 설문지가 아닌 여러 다른 항목에 대한 조사를 통해서 적
성을 파악하는 테스트의 결과를 통해서 부모의 하는 일과 취향이 그대로 드러나니 신기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나는 우리 아들이 목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은근히 가지고 있다. 목사의 신분인 분
들이 대개들 가지고 있는 바램을 나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강요할 성질의 것이 아니므
로 강요할 계획은 없지만 속으로는 앞으로도 많이 바랄 것이다. 최소한 이번 적성검사 결과를 가
지고 볼 때 내 은근한 희망은 이루어질 확률이 전보다 조금은 높아진 것을 느낀다. 물론 하나님
이 부르시지 않으면 제 아무리 적성검사 결과가 그렇다고 하더라도 할 수 없지만 말이다.
내 기억에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적성검사를 한 것 같다. 그 때 했던 적성 검사와 아들이
한 적성 검사가 어떻게 얼마나 다른 종류인지 잘 알지 못하지만 하여간 내 적성 검사 결과는 이
랬다. 문과적 적성은 99.9점이었고 이과적 적성은 79점이었던가 그랬다. 다행히 이과적 적성의 평
균이 60점대였으니 평균보다는 높았지만 문과적 소질에 비하면 비할 바가 못된 기억이 있다. 하
여간 난 지금 목사가 되어 있고 어줍잖게 글도 쓰고, 어디 가서 말 못한다는 말은 별로 안듣고
산다. 고등학교 때는 수줍음이 엄청나서 과연 목사가 될 수 있을까 싶기도 했었지만 지금은 그래
도 상당히 적응해서 살고 있다. 이 길이 적성에 맞긴 맞는 모양이다.
아들의 적성 검사 결과를 보면서 난 행복했다. 내 희망을 담은 미래를 예상할 수 있어서 좋
았고, 남을 배려하는 수치가 아주 높다고 해서 좋았으며, 우리 부부를 골고루 닮았다는 것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이제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 우리 아이들을 깊이 사랑하며 이 시대의 동량으로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줘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이 남는다. 사랑하는 아들의 아름다운
미래를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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