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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준엽이 셔츠에 ‘NO DRUG’ 쓴 까닭

강산21 2009. 5. 31. 19:24

“마약 음성판정 나왔다는데 통보도 안 해줘” [2009.05.29 제762호]
[초점] 경찰 인권침해 고발한 가수 구준엽 “세 번이나 억울하게 조사받다 보니 경찰차만 봐도 화나”
임지선
 

» 구준엽씨. 사진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NO DRUG’(노 드러그). 가수 구준엽씨의 흰색 티셔츠 위, 빨간 글씨가 선명하다. 지난 5월6일 기자회견을 열어 연예인 마약 수사 과정의 인권침해를 고발한 뒤 그가 직접 만든 티셔츠다. 억울함이 쌓인 가슴에 글씨를 새기고 무대에 섰다. 서울경찰청 마약수사대는 지난 5월15일 구준엽씨의 체모에 대한 마약 검사 결과 음성 판정이 나왔다고 발표했다. 5월19일 만난 구씨는 “정작 내게는 지금까지 경찰이 아무런 통보도 해주지 않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과 함께 이번 사건과 관련된 인권 문제를 짚어봤다. 구준엽씨는 이것이 마약 수사와 관련해선 ‘마지막 인터뷰’가 될 것이라고 했다.

 

 

예측 가능한, 한심한 수사

임지선(이하 임): 체모 검사 결과 약물 음성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심경은.

구준엽(이하 구): 인터넷에 뜬 기사를 보고서야 검사 결과가 나왔음을 알았다. 의아하다. 나한테 먼저 전화가 왔어야 순서가 아닌가. 지금 이 순간까지 경찰은 내게 아무런 연락을 하지 않았다.

오창익(이하 오): 경찰 수사의 목적은 범인을 잡는 것과 죄가 없음을 밝히는 것인데 한국 경찰은 죄를 밝히는 일만 한다. 조사를 했는데 죄가 없을 경우 며칠 내로 통보한다는 규정도 없다. 선량한 시민이 국가의 수사 활동을 도왔을 때 정작 그 시민에 대한 경찰과 검찰의 서비스는 없다.

구: 솔직한 심정으로는 조사를 담당했던 경찰에게 전화해 “저 구준엽인데, 저한테 좀 미안한 일 있지 않으세요”라고 묻고 싶다. 하지만 상대가 국가기관이니 솔직히 무섭다. 지금 이렇게 일을 크게 벌인 것도 무서운데…. 경찰 발표 뒤 후련하기보다는 더 화가 난다.


오: 경찰은 언론플레이만 한 거다. 구준엽씨가 기자회견까지 해서 인권침해 문제를 제기했는데 경찰의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 (검사 결과를) 서면 혹은 전화로라도 통보해줘야 맞다.

임: 이번이 세 번째 마약 검사였다.

구: 2002년, 2008년 그리고 올해까지 총 세 번 마약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2002년엔 경찰이 집으로 찾아왔다. 당시 난 집에 없었고 평소 고혈압인 어머니가 경찰을 보고 놀라서 쓰러지셨다. 30년간 믿어온 아들인데 마약수사대라는 사람들이 찾아오니 얼마나 놀라셨겠나. 경찰서에 가니 경찰이 제일 친한 친구가 다 얘기를 했다고 하더라. 기가 막혀 “누구요, 강원래가 얘기했어요?”라고 물었다. 이후 부모님은 연예인 마약 수사 얘기만 나오면 “또 너를 부르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신다. 아니나 다를까, 부르더라. 예측 가능한, 정말 한심한 수사 아닌가.

오: 제보를 기반으로 수사를 할 수는 있다. 문제는 합리적으로 해야 한다는 거다. 대중의 사랑을 받고 사는 연예인의 경우 이미지가 중요하다. 마약 수사 선상에 오르내리는 것만으로도 연예인은 상처와 타격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경찰에겐 수사 효율만 중요할 뿐 조사를 받는 사람의 인권은 중요하지 않다. 목적이 옳다고 해서 단속을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 건 아니다.

구: 검사 결과에 대해서는 전화 한 통 안 해주면서 조사를 할 때는 수십 번 전화를 해댄다. 2008년에 다른 동료 가수가 마약 투약으로 구속됐을 때도 “네가 다니는 클럽에 드나드는 연예인이 누구냐”는 식으로 물었다더라. 연예인이라고, 클럽에 다닌다고 너무 쉽게 싸잡아 생각하는 거다. 당시 검찰 조사관들이 전화를 했기에 “압구정동인데 일이 2시간 후에 끝나니 그때 통화하자”고 했다. 10분 뒤에 “압구정역에 왔는데 어디로 가면 되냐”고 전화가 오더라. 일을 하다 말고 가서 조사를 받았다. 피해를 보면서까지 조사에 응해줘도 이후에 ‘음성 판정’이 나왔다는 통보조차 못 받았다.

» “연예인들, 인권침해 당하면서도 몰랐을 가능성이 크다.”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왼쪽)의 설명을 듣고 구준엽씨는 “이번 기회에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사진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치욕적인 순간들

임: 이번 마약 조사를 받으며 느낀 인권침해는 무엇인가.

구: 심각한 게, 경찰이 영장을 보여주더라. 확실한 제보도 증거도 없을 텐데 어떻게 그런 게 나올 수 있나. 마약 조사를 또 한다기에 당시 손님 접대를 하고 있는 식당으로 오라고 했더니 사람 없는 데서 만나자고 하더라. 화가 나서 털 뽑아주고 오줌 싸주면 될 거 아니냐고 말했다. 결국 집으로 오라고 했는데 마침 어머니가 집에 계셔서 경찰을 데리고 주차장으로 갔다. 주차장 화장실에서 소변을 받아주고 마침 비어 있는 경비실에 가서 체모를 뽑아줬다.

오: ‘카더라’식의 제보로 합리적인 이유 없이 수사를 하는 것이 문제다. 제보를 받았다 해도 탐문을 한다든지 하는 다음 단계가 없이 바로 사람을 데려다가 조사를 한다. 수사를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상처가 될 수 있는데 딱 찍어서 검사하는 것을 너무 쉽게 여긴다.

구: 더 치욕적인 일도 있었다. 뽑아준 음모를 경찰이 손가락으로 툭툭 치면서 “이거 색깔이 왜 이래요. 염색한 거 아니에요?”라고 말하더라. 마약 성분을 은폐하려고 염색한 거 아니냐는 말에 너무 화가 나 그럼 염색약도 검출되는지 검사하라고 소리쳤다. 내가 마약범이라고 단정한 듯 굴었다. 세 번이나 왜 이러냐고 항의했더니 당신이 세 번이나 조사를 받을 정도면 뭐가 있지 않겠냐고 말하더라. 너무 억울하다니까 이번에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조사를 받으라고도 했다. 이후에 약간의 정신병이 생긴 것 같다. 경찰이나 경찰차만 봐도 욕이 나오고 화가 난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면 이건 또 뭘까 멈칫한다.

오: 앞으로 구준엽씨는 확실한 증거 없이는 마약 수사 선상에 안 오를 것 같다. 그럼 모든 연예인이 부당한 조사를 받지 않으려면 기자회견을 한 번씩 해야 한다는 말인가 싶다.

구: 또 의문이 드는 건, 마약 투약이 살인 사건도 아닌데 꼭 이렇게까지 해서 잡아야 하냐는 거다. 살인죄도 증거 불충분이면 풀려나는데 증거도 없는 사람을 건드려서 잡아내려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

오: 경찰이 범인을 검거할 때 점수를 매기는데 마약범을 검거하면 점수가 높다. 마약범은 절도, 사기 등의 범죄에 비해 검거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마약 수사와 관련해서는 수사관들이 확 달려드는 경향이 있다.

임: 왜 기자회견을 하게 됐나. 마약 조사 사실이 알려져 이미지에 타격이 더 클 수 있지 않았나.

구: 아파서 죽을 것 같아서 얘기한 거다. 인권침해가 너무 심하다고 느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피가 질질 흐를지언정 참을 만했다. 괜히 이름 오르내리느니 내가 참자 싶었다. 이젠 자꾸 밀리다 보니 절벽에 서서 잘못하면 떨어지게 생겼더라. 이미지고 뭐고 간에 이번에도 그냥 넘어가면 내년, 아니 6개월 뒤라도 또 조사를 나올 거고 그렇게 살면 내 가족까지 너무 힘들지 않나. 내가 먼저 매니저에게 어떻게 하면 기자회견을 할 수 있냐고 물어서 했다.

오: 연예인은 수사의 좋은 먹잇감이다. 경찰에선 오히려 연예인 조사 사실을 흘리고 ‘연예인 K씨’라는 식의 보도도 이미 나오고 있지 않았나.

» 지난 5월6일 구준엽씨가 마약 조사의 인권침해를 고발한 기자회견 과정모습. 사진 연합 홍기원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식 보도

구: ‘큰 연예인 연루’ ‘연예인 K씨 조사 중’ 등 기사가 나왔다. 한 방송에선 우리 매니저가 한 말을 녹취했더라. “DJ도 해서 클럽은 자주 가지만 그런(마약) 건 상관없어요”란 말을 내보낸 뒤 기자가 “측근이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고 멘트를 했다. SBS <한밤의 TV연예>의 경우도 내 인터뷰를 내보낸 뒤 연기가 나는 굴뚝 사진을 넣어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식의 보도를 하더라.

오: 단순한 의심만 갖고 사람을 괴롭히면 안 된다는 것은 인권의 기본이다. 이번 기자회견을 보면서 많은 이들, 특히 청소년들이 용기가 났을 것이다. 왕따당하며 괴롭힘을 당하던 아이가 “아프니까 때리지 말라”고 말하게 됐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인권 문제에 대한 연예인의 발언이 중요하다.

구: 검사 결과도 안 나온 상태에서 기자회견을 한다고 하니 주변에서 우려를 많이 했다. ‘오버’하다가 불이익을 받으면 어쩌냐는 거였다. 그래도 기자회견을 한 뒤에는 잘했다고들 한다. 어떤 친구는 자기도 억울하게 마약 검사를 받았는데 그런 얘기를 해줘 고맙다고 하더라. 아무튼 기자회견 이후 포털 검색창에 ‘구준엽’을 치면 연관검색어로 ‘마약’이 뜬다.

오: 마약 조사를 세 번 받았다는 내용이 경찰 기록으로 남는 것도 문제다. 마약범으로 잡힌 것이 아님에도 다음번에 다른 경찰이 구준엽씨 기록을 보면 “세 번이나 조사를 받았다니 뭐가 있겠군”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악순환이다. 이런 식으로 연예인의 이미지에 타격을 주면 재기가 어렵거나 불가능할 수도 있는 문제다. 그땐 누가 책임질 건가.

임: 법적 대응도 할 생각인가.

구: 경찰의 징계나 내 금전적 이득을 위해 시작한 일은 아니기 때문에 법적인 절차는 밟지 않을 생각이다. 그저 지렁이가 하도 밟히다가 꿈틀거린 셈이다. 속에는 불이 나지만 계속 싸워서 얻을 게 없다.

오: 국가를 상대로 한 명예훼손이나 국가인권위 신고로 대응할 수 있는 문제다. 다만 구준엽씨가 던지고 싶은 메시지는 나 같은 시민, 동료 연예인 등을 더 이상 건드리지 말라는 거다.

구: 이번 사건으로 경찰이 좀더 신중해지는 계기라도 됐으면 좋겠다. 나 같은 사람도 있으니 다음부터는 신중히 검사하라는 거다. 나만 보호해달라는 얘기가 아니다. 나야 연예인이니까 기자회견이라도 했지 일반인들은 찍소리도 못하고 당해야 하지 않는가. 힘없이 당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었다.

오: 구준엽씨의 이번 행동은 ‘아프면 아프다고 해라, 내가 아프다고 하니까 그래도 이만큼 바뀐 거다’라는 걸 동료 연예인들과 세상에 보여줬다. 후배들 중에 아파하는 사람이 있다면 너에게도 인권이 있다는 걸 알려주는 역할을 구준엽씨가 했으면 좋겠다. 다 귀한 사람이다. 함부로 집적대고 만져도 되는 존재가 아니다. 이런 생각을 갖게 만드는 일에 구준엽씨 사건이 도움이 될 것이다.

 

인권 사각지대 연예인 인권 교육 해야

임: 연예인에게 인권이란.

구: 연예인들은 인권이 뭔지, 어떻게 침해받고 있는지, 어떻게 해야 보호받을 수 있는지 잘 모른다. 나도 내가 경험하기 전까지는 경찰과 검찰이 선량한 사람을 괴롭힐 수 있으라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 인권을 보호해줄 거라 믿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구나, 결국 내 인권을 보호하려면 내가 나서야겠구나 싶었다.

오: 그동안 인권침해를 당하면서도 인권침해임을 몰랐을 가능성이 크다. 겉은 화려하지만 인권 사각지대다. 연예인들을 모아놓고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인권 교육을 해야 한다.

구: 이번 사건 전에는 인권 문제로 고민해본 적도 없다. 인권침해를 당했을 때 특히 어린 연예인의 경우는 도움을 받을 곳이 없다. 게다가 신인일수록 소속사의 뜻을 거스를 수 없다. 마음을 약하게 먹고 죽는 연예인을 보면 안타깝다. 연예인들이 좀더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가족, 특히 부모님을 생각했으면 좋겠다. 요즘 너도나도 연예인을 하려고 하는데 너무 섣불리 발을 들여놓지 않았으면 한다. 마음을 강하게 먹어야 한다.

오: 연예인 중에 심약하거나 생각이 짧은 사람이 다 죽어야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안전판을 마련해야 한다. 인권 교육과 상담을 통해 그들의 우울과 분노를 조절해줘야 한다.

구: 이번 기회에 많이 배웠다. 인권 문제를 겪을 때 시민단체와 함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도 배웠다. 앞으로도 인권 문제에 더 관심을 가질 생각이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