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죄 살인죄, 부시를 심판하라 | |
‘죄없는’ 이라크 침공하고 국민 전쟁공범 만들어 전직 검사가 바라본 미국의 어두운 현재와 미래 | |
한승동 기자 | |
빈센트 불리오시 지음·홍민경 최지향 옮김/웅진지식하우스·1만3000원
정치적 견해가 다르면 세상도 달라 보인다. 한쪽의 절대선이 다른 쪽에선 절대악으로 비칠 수 있다. 요즘 한국사회가 그 표본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건 마음먹기에 달렸다(일체유심조)는 상대주의가 다 통용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더 엉키게 만들 뿐이다. 현실에선 그래도 옳은 게 있고 그른 게 있다. 그럼 어떤 게 옳은 것인가? 중요한 것은 먼저 각 주장을 다 들어보는 것이다. 판단은 그 다음이다.
‘미국 최고의 검사’라는 칭송을 받았다는 전직 유명 법조인이자 성공한 넌픽션작가인 빈센트 불리오시의 <대통령을 기소하다(The Prosecution of George W. Bush for Murder)>(웅진지식하우스 펴냄)는 미국 민주당 온건파 시선으로 본 미국 정치현실이다. 집권 공화당 정치에 대해 몹시 비판적이고 신랄하며 비관적이다. 물론 정반대의 관점도 있을 것이다.
조지 부시가 총득표수에서 뒤지고도 대통령에 당선된 뒤 취임한 것은 2001년 1월이었다. 그 8개월 뒤 9·11사태가 일어났다. 그러니까 9·11 비극의 책임에서 가해자는 말할 것도 없지만 거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공화당 부시 정권 또한 자유로울 수 없다. 부시 정부 테러담당 보좌관을 지낸 리처드 클라크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증언했다. “부시 대통령은 몇 달 동안이나 테러의 심각성을 무시해왔다. 약간의 관심만 보였다면, (9·11) 테러 공격을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 한 달 전인 8월6일 텍사스 크로퍼드 목장에서 5주 동안 휴가를 즐기고 있던 부시 대통령에게 중앙정보국(CIA) 직원이 ‘빈라덴 미국 영토 공격 결정’이라는 제목이 달린 일급비밀 메모를 전달했다. 거기엔 알카에다가 ‘비행기 납치’와 같은 공격을 준비하고 있고 그 조직원들이 미국 ‘연방정부건물들’을 관찰하고 있다는 매우 구체적인 첩보들이 들어 있었다. 그에 앞서 6월30일 작성된 CIA 보고서는 ‘빈라덴이 큰 일을 꾸미고 있다’는 제목 아래 ‘대재앙’의 발생을 경고했다. 조지 테닛 CIA 국장도 당시 상황을 “안보는 빨간 불이 켜진 상태”, “거의 최악의 상황”이었다고 증언했다. 그해 들어 9·11 직전까지 빈라덴에 관한 보고서가 40종을 넘었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과 딕 체니 부통령, 콘돌리자 라이스 국가안보보좌관 등은 거의 손을 쓰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무시한 것일까. 어쨌든 9·11사태와 관련해 부시 정권 역시 중대한 책임을 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9·11 이후 지지율이 오히려 90%대로 치솟았다. 이런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은 미군의 이라크 침공으로 이어지고, 그 전쟁이 엄청난 재앙 속에 명백히 실패로 귀착했는데도 2004년 대선에서 부시가 압승으로 재선되는 더욱 이해하기 힘든 상황으로 나아간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
미국에서만 그런 건 아니다. 이명박 정권 창출자들이 지난 대선에서 주술처럼 내세운 ‘잃어버린 10년’이란 구호는 기실 자신들이 1997년에 저지른 패착과 파산이 부른 결과였다. 그런데도 대선에서 압승한 쪽은 파산 뒷수습을 한 세력이 아니라 그때 파산의 주역들이었다.
지은이가 제시하는 부시와 그 측근들 사기행각의 핵심은 이라크 침공을 위한 사실 날조. 그것은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살상무기(WMD)를 대량 보유하고 있거나 곧 보유해 그것으로 미국을 공격할 것이라는 것, 그리고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대통령이 9·11사태를 주도한 빈라덴의 알카에다와 한통속이라는 것, 이 두 가지 주장으로 요약된다. 있지도 않은 이라크의 ‘임박한’(실제 이 단어 사용을 의도적으로 피했지만) 공격에 대비해 선제공격을 가할 수밖에 없다고 한 부시와 그 측근들 주장은 정당방위로 분칠되고 또 그렇게 받아들여졌다. 후세인이 알카에다와 한통속이라는 주장 역시 이라크 침공의 구실이 됐다. 하지만 그 두 가지 모두 근거없는 날조였다. 지은이는 이미 드러나 있지만 대중이 제대로 모르는 이 날조 사실들을 중앙정보국 등의 정보기관 보고서와 회의자료들을 다양하게 인용하면서 꼼꼼히 입증하고 재구성한다.
이를 토대로 지은이는 ‘사상 최대의 사기꾼’ 부시가 의도적으로 국민을 전쟁에 끌어들였다고 가정하고 부시를 일급살인죄로 기소해 사형제가 살아 있는 미국 38개주 배심원들 앞에 세워 실형을 받게 하겠다는 포부를 밝힌다. 이럴 때 이런 문제가 대두된다. “실제 자기 신체를 이용하지 않은 살인에 대해 살인죄가 성립할 수 있나? 현직 대통령을 형사범죄로 기소할 수 있나? 의회가 승인한 합법적인 일에 책임을 물을 수 있나? 피해 당사자가 기소하지 않아도 범죄가 성립할 수 있나? 살인의 의도성을 증명할 수 있나?” 불리오시는 이 난관들을 모두 돌파한다. 그가 부시와 공모자들의 유죄를 확신하는 근거로 동원한 게 ‘결백한 피이용자(innocent agents)’와 ‘대위(대리) 책임법(vicarious liability rule)’.
지은이를 분노케 한 것은 살인죄만이 아니다. 1조 달러 이상을 낭비한 이라크 침공과 신자유주의 정책은 미국사회를 망가뜨리고 쇠락의 길로 접어들게 만들었다. 그는 쇠락을 뒷받침하는 여러 통계들을 예시하지만, “이 나라를 엄청난 혼돈 속으로 몰아넣은 자격 미달의 부시를 두 번이나 대통령으로 뽑았다는 사실” 자체가 미국의 쇠락을 충분히 입증하는 사실이라고 지적한다. 우리 사회는 지금 그 부시 정권을 선망하는 정치집단이 배타적 기득권층으로 군림하는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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