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렁에서 건진 남편 몇 년 동안을 남편은 오직 술로 살았습니다. 알콜중독이라는 끔찍한 불행의 먹구름 이 단란하던우리 가정을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음에도 저는 차마 인정하기가 싫었습니다. 만 20년간을 정말이지 남들보다 열심히 공직생활을 해 온남편이 어느날 돌연 사직을 하고 사업을 시작한다고 나섰습니다. 첫사업에 어느 정도 자신을 얻은 그이는 조금 무리하게 다른사업을 벌였습니다. 하지만, IMF의 엄청난 바람 앞에 뿌리가 약한 우리의 사업은 순식간에 무너졌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대형음주사고까지 발생한 후 우리는 결혼 후 땀흘려 이루어 놓았던 모든 것을 한순간에 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홧술로 자신을 죽여가기 시작한 남편은 완전히 변하여 딴사람이 되어갔습니다. 허구헌날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내던지고 싸우며온갖 추태를 마다 않더니 급기야 간경화란 진단을 받은 이후로는 우울증까지 겹쳐 모든 의욕을 상실한 채 꼬박 2년간을 집 안의모든 창문의 커튼을 내린 채로 컴컴한 방구석에서 술병을 끼고 누운 채, 방바닥에 자국이 남을 만큼 꼼짝않고 누워 있었습니다. 살사람은살아야 되겠기에 저는 호구지책으로 주인집 1층의 너댓 평되는 점포를 얻어 조그마한 식당을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하루종일 일에 시달려 통증이 심한 어깨를 주무르며 살림집 문을 열면 어둑컴컴한 집안은 온통 술 썩는 냄새로 가득하고헝클어진 머리에 쾡~하니 들어간 눈, 덥수룩한 수염의 냄새나는 폐인이 가위 눌리듯 술기운에 눌린 채로 시체처럼 빈 술병들과 함께뒹굴고 있었습니다. 나 좀 봐! 응? 얼굴 좀 들고, 내가 불쌍하지도 않아, 응? 우리딸 불쌍해서 어떡하라구 이러는거야. 제발 정신 좀 차려요! 제발…. 면도를 해준다는 게 서툰 솜씨 탓에 핏기없는 그이 얼굴을 베어 흐르는 피를 팔꿈치로 연신 닦아주며 안타깝게 호소하고 있는 내몸은 어느새 눈물과 땀과 피로 얼룩지고 있었습니다. 그때쯤이었을까요. 그는 심한대인기피증까지 보이며 끝없이 걸려오는 친구나 친지들의 전화조차 받기를 거부하고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서도 술은 어떻게구해 마시는지 돈을 모두 압수하고 아무리 술병을 치워버려도 그것들은 냉장고, 장농, 신발장, 책꽂이, 보일러, 싱크대 가릴 것 없이문만 열면 그 어느 곳에서나 시도 때도 없이 쏟아져 나왔고 저는 식당에 있는 술병까지 모두 치워버리고 손님에게도 술을 안팔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 먹지도 않을 음식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차려들고 층계를 올라가던 저는 계단한쪽에 쪼그려 앉은 채 무릎위의 책가방에 얼굴을 묻고 어깨를 들썩이며 소리없이 울고 있는 교복차림의 딸아이를 보게 되었습니다. 이유를물어도 대답을 안하기에 방으로 들어서니 남편은 슈퍼마켓의 비닐봉지에 들어있는 소주병을 꺼내 덜덜 떨리는 손으로 병째로 마시는중이었습니다. 하나뿐인 아이를 끔찍이도 사랑하던 남편이였기에 어떤 일이 있어도 아이에게 술심부름만은 안 시켰는데, 이제는 자신의마지막 자제력까지 상실한 듯, 아이에게 부탁한 모양이었고, 그 불쌍한 아빠의 모습을 본 딸아이는 말없이 방금 내게서 받은 점심값으로 술을사다드린 모양이었습니다. 교복을 입은 채로 가게에서 소주를 사야했던 아이의 마음을 생각하니 왈칵!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쏟아져밥상을 던지듯 내려놓고 소리내어 울었습니다. 이상한 느낌이 들었는지 술병을 든 채로 문을 열고는 딸아이의 모습을 내려다 보던남편은 화장실로 들어가더니 젖은 타일바닥에 무릎을 꿇고는 변기통속에 먹던 술을 쏟아 부으며 컥! 컥! 울부짖고 있었습니다. 아이는계단에서, 저는 거실에서, 남편은 화장실에서, 모두 원없이 펑펑 울어버린 그날. 점심을 챙겨 올라가니 어두운 방구석에 쓰린배를 움켜쥔 채 늘어져 있어야 할 사람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순간, 저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아 식당영업은 내팽겨둔 채 허둥거리며 이러저리찾아 다녔으나 헛탕을 치고, 엉뚱한 데서 연락이 왔습니다. 정신병원이라는 겁니다. 집에서 3km거리에 있는 정신병원으로 남편이제발로 찾아가 입원을 간청하고 있는 모양인데, 병원측으로서는 보호자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나는 병원으로 달려가 알콜클리닉과정에 입원을 시켰습니다.최악의 경우 생명까지 위협한다는 그 무서운 금단현상을 극복하고 불과 2주일 만에 퇴원하는 남편의 얼굴엔 참으로 오랜만에 평온함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가장 기뻐한 것은 딸아이였습니다. 학교친구들의 것까지 삼십여 통이 넘는 격려와축하의 엽서를 한아름 아빠의 가슴에 안겨주며 해맑게 웃고 있었습니다. 병원생활이 어떠했는지 묻는 저에게 남편은 이렇게말했습니다. 창문마다 쇠창살이 쳐져있는 병실에서 밖을 내다보면 메주고개의 중간지점에 병원의 정문이 있고 신호등이 있는데,용인에서 신갈쪽으로 고개를 질주해 내려오던 차량들이 심심치 않게 신호대기 차량과 추돌사고를 일으키곤 했는데 그때마다 환자들이 창가로 몰려가서는 이렇게 말하더군. 아니, 저~ 저런. 미친녀석들 같으니! 고갯길에선 좀 천천히 다니지. 뭐가 그리도급하다고 달리다가 맨날 사고를 낸단말야. 쯧쯧쯧. 정신병동 안에서 바라본 바깥세상. 밖에서 바라보는 정신병동. 과연어느쪽이 손가락질을 하는 게 옳은지조차 가늠이 되지않는 혼돈의 시대에 자신의 존재를 객관화시켜 바라볼 수 있는 소중한시간이었다는 겁니다. 오늘은 남편이 땀흘려 마련하여 몰래 감추어 놓았었다는 우리 가족만의 30평짜리 공간에 세식구가 모여 기쁨을나누고 있습니다. 잃어버린 아파트 이야기가 아닙니다. 남편이 선물한 30평짜리 공간은 새로 취직한 회사의 울타리 옆에누군가가 쌓아놓은 흙더미 위에 땀흘려 일구어 놓은 채소밭이었습니다. 이것저것 흙더미 위에 푸성귀를 심어 놓기는 했는데 초보농군의솜씨인지 라 배추는 거의 절반 가까이 죽었지만, 무는 제법 실하게 자랐더군요. 술과의 그 지독한 인연을 완전히 끊어버린남편은 이미 오래전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고, 사춘기에 겪어야 했던 가혹한 시련을 너무나 고맙게도 극복하고 어느새 대학생이되어준 사랑스런 우리 딸아이는 나무젓가락으로 잡은 배추벌레까지도 불청객이지만 행복한 우리공간에 찾아온 손님이라며 차마 죽이지 못하고풀섶에 내던지고 있습니다. 딸아이가 던지던 배추벌레 한 마리가 내 옷자락에 붙는 순간, 저는 호들갑스럽게 소리를 내질렀고살포시 나를 부축해주며 다가온 그이의 몸에서는 지겹게 배어있던 술썩는 냄새대신 스킨로션과 땀내음이 적당히 뒤섞인 은은한 남성의 체취가배어나와 마치 다른 남자와 같이 있는 듯 싶어, 딸아이 몰래 얼굴을 붉히며 정말로 오랜만에 가슴이 두근거림을 느껴보는 시간입니다.
<따뜻한 세상만들기>는 작으나마마음을 나누며 따뜻함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며 만든 방입니다. 따뜻한 글을 싣고서로 좋은 글을 공유하며 자그마한 정성이라도 함께 모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이제 시작입니다. 함께 만들어 가는 열린 공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 칼럼지기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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