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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의 OECD보고서 ‘한탕주의’ 왜곡
강산21
2007. 3. 22. 11:05
사학 이사회개방 권고는 안보이나 |
동아일보의 OECD보고서 ‘한탕주의’ 왜곡 |
말은 앞뒤 자르고 맥락없이 말하면 본래 뜻과 전혀 다르게 전달되기 십상이다. 또 자신이 말하고 싶은 사실만 보도하고 불리한 내용에 대해 침묵하는 것도 제대로 된 언론의 자세가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오딜 살라(Odile Sallard) 공공관리 지역개발 국장이 지난 19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OECD 규제개혁보고서-한국:규제개혁의 진전’이라 제목의 한국 규제개혁 평가 결과발표를 한 것과 관련한 동아일보의 보도가 꼭 이와 같은 경우다. 동아일보는 이날 발표된 'OECD보고서'를 인용해 "3불정책, 대학 독립성 명백히 제한"이라는 제목으로 "OECD는 본고사, 기여 입학제, 고교 등급제 등을 금지하는 한국의 이른바 3불 정책에 대해 '대학의 독립성을 명백히 제한하는 규제'라고 지적했다"고 보도했다.
OECD 보고서가 말하는 본 뜻은 기사는 국공립대학 학교법인화를 통한 법적자율성 권고와 함께 마치 OECD 규제개혁보고서가 '3불 정책'을 가장 시급하게 개선해야 할 과제로 지적한 것처럼 보이도록 편집해 놓고 있다. 그러나 동아일보의 기사를 액면 그대로 본다면 독자는 잘못된 정보를 얻게 된다. OECD 규제개혁보고서가 말하는 원 뜻과 다르기 때문이다. OECD 규제개혁보고서는 학생선발과 학생정원에 대한 문제가 최근 몇 년간 한국에서 논쟁이 됐던 규제 이슈였다는 객관적인 상황을 전달하고, 동아일보 기사처럼 "기관의 독립성을 명백히 제한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OECD는 한국의 3불 정책이 형식적으로 '규제'라는 것을 전달할 뿐이지 이를 철폐해야 한다는 식의 가치판단은 유보하고 있다. OECD 규제개혁보고서는 우리나라가 지난해 제출한 보고서를 기반으로 대학의사결정 기준 등 학교관련규제, 입학자격요건 등 학생관련 규제, 지적재산권보호와 같은 연구, 과학 기술부분 등의 규제 현황을 진단하고, 이에 대한 정부의 규제개혁 노력을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판단기준과 우리나라의 교육상황에 대한 진단을 고려한 OECD의 정책 대안은 △고등교육 질 관리에 대한 총괄·조정을 책임질 수 있는 기구 설립 △국공립대학 법인화 추진 △대학의 전략적 지도력, 경영, 그리고 내부 질 관리역량 강화 △졸업생 평가 및 취업관련정보 공개 등이다. 보고서 어디에도 '3불 정책 폐지'는 찾아볼 수 없다. 그럼 3불 정책에 대한 OECD의 견해는 무엇일까. 지난 2월에 발표한 '한국고등교육 평가보고서'에서 OECD는 오히려 국내 일부 대학의 요구와 언론 논조에 밀려 '3불 정책'을 폐지하면 안 된다고 명시적으로 경고했다. 한국고등교육 평가보고서에서 OECD는 입시규제에 대한 여러 비판 내용을 요약한 뒤 "그러나 우리는 고등교육의 투명성과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새로운 장치가 마련되기 전에 너무 서둘러 '3불정책 등 기타 규제들'을 없애는 것에 반대한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이것이 굳이 '3불정책'과 관련해 OECD의 입장이라고 찾아볼 수 있는 대목이다. 당시 OECD는 자율화와 다양화를 위한 제도적 틀을 '발전적 규제', '유연한 규제'로 표현했다. OECD "개방이사로 사학 투명성 높여야" 동아일보는 OECD 규제개혁보고서의 앞뒤를 잘라 본뜻을 잘못 전달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에 불리한 사실을 은폐하고 있다. OECD는 이번 보고서에서 '사립대학 거버넌스 보강'을 권고했다. 사립학교법 개정과 맞물려 각종 민생개혁법안이 국회에서 난항을 겪는 상황을 고려할 때 상식적인 언론이라면 당연히 관심을 가질만한 내용이다. OECD는 사립대학의 거버넌스 보강을 위해 "(사학의) 재정투명성을 높이고 책무성 강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과 이를 위해 "학내구성원 대표들에 의해 추천된 개방이사를 임명하여, 이사회의 개방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에 대한 OECD의 의견은 완고하다. OECD는 "현 제도로는 사립대학의 투명성과 책무성을 확보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다른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투명성과 책무성 부분에 있어 사립대학 규제틀은 강화될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사설에서 "사학법 문제의 핵심은 사학을 설립자에게서 빼앗을 수도 있게 하는 개방형 이사제를 통해 사학의 자율권을 부정하고, 자유민주주의 헌법정신을 해친다는 데 있다"고 강변한 동아일보의 논조와는 정반대인 셈이다. 한탕하고 자리를 뜰 뜨내기 장사꾼이라면 진실을 말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입맛대로 앞뒤 맥락을 자르고 보고서의 일부 문장만을 인용해 기사를 왜곡 생산하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 ||
손혁기 (pharos@korea.kr) | 등록일 : 2007.03.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