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현실그대로

오늘, 시월의 마지막날 사표를 썼습니다(정운현)

강산21 2008. 11. 2. 20:59

오늘, 시월의 마지막날 사표를 썼습니다.

지난 1월 2일 한국언론재단 연구이사로 부임한 지 만 10개월만입니다.

관련법에 보장된 저의 임기는 3년, 즉 2010년 말까지입니다만,

이렇게 중도에 물러나게 된 것입니다.

이미 이곳에 쓴 바 있습니다만,

저는 지난 노무현 정부 말기인 지난해 12월 28일 재단 이사회에서 선임됐습니다.

당시 저는 전 직장에서 임기를 2년여 남겨두고 있었습니다만,

그쪽 일은 대충 마무리가 된데다 언론재단에서 뭔가 보람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고 근무처를 옮기게 된 것입니다.

저를 추천한 사람들에 따르면, 제가 이사회에서 선임될 무렵이

지난 정부의 임기말이어서 나중에 논란이 없겠느냐고 물어보았더니

이 건은 이미 진행돼온 사안인데다 인수위측과도 협의가 끝난 사안이라고 하더군요.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결국 문제가 불거지더군요.

즉, 전 정권에서 임명된 인사들은 모두 자리를 비우라는 것이었습니다.

정부가 교체되면 내각이나 몇몇 요직은 자리를 비우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제가 권력을 잡아도 그리 할 것입니다.

그러나 언론재단 임원 인사는 앞서 언급한대로 새 정부측과 협의가 끝난 사안인데다

정부에서 요직으로 꼽을만한 그런 중요한 자리는 아닙니다.

그간의 이명박 정부가 그러했듯이 언론재단에도 막무가내였습니다.

우리 재단의 감독기관인 문광부의 유인촌 장관이 공공연히 자리를 비우라고 요구하더니

뒤이어 신재민 제2차관(엄격히 말해 이 사람은 언론정책이 관할도 아닙니다. 일종의 월권행위인 셈이죠. 그래서 국회에서 이 건으로 여러번 두드려맞기도 했구요)이 나서서 한국일보 선배인 재단 이사장에게 거듭 나가라고 요구하더니,

급기야 이들 휘하의 담당 국장, 과장들도 나서서 임원진들에게 자리를 비우라는 겁니다.

(국장, 과장 이들 두 사람은 지난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에 행정관으로 파견돼 노무현 정부의 언론정책을 행정적으로 뒷받침하던 작자들입니다. 그런 자들이 이제와서는 이명박 정부의 언론정책 실무를 맡아 노무현 정부의 개혁성과 가운데 하나인 신문법의 개정 작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공직자들을 '영혼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하더니 별로 틀린 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법과 원칙’을 강조하고 있는데, 그 휘하의 사람들은 실정법에 임기가 보장된 사람들에게 코드가 안맞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조건 물러나라고 윽박질렀습니다.

말이 윽박이지 사실은 옆구리에 총칼을 들이댄 것과 하등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이에 대해 저를 포함해 임원진은, 두 가지 사항을 밝혔습니다.


첫째, 부당한 사퇴압력은 받아들일 수 없다

둘째, 적절한 때가 되면 거취를 표명하겠다


그러나 그들은 막무가내였습니다. 즉 군소리 말고 당장 물러나라는 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임원들은 이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앞서 언급한대로 법적으로도 맞지 않을뿐더러 재단의 미래가 걱정됐기 때문입니다.

임원들이 퇴진하지 않자 문광부는 마침내 야비한 행동을 개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즉, 언론재단이 안고 있는 아킬레스건(대략 3가지)을 걸고 넘어졌습니다.


언론사와 언론인 및 언론단체 지원을 본분으로 하는 언론재단은 민법에 근거한 민간 공익재단입니다.

그러다보니 재원은 정식 국가 예산이 아니라 정부기관 및 공기업 광고 대행 수수료(10%)를 주 재원으로 써 왔습니다.

그런데 정부광고는 문광부가 이들 기관으로부터 대행을 받아 언론재단에 그 업무를 위탁해왔습니다. 그러다보니 정부광고 업무의 칼자루는 문광부가 쥔 셈이고, 재단은 ‘을’의 입장에서 문광부에 목이 맨 꼴입니다. 바로 이 점을 문광부가 캐치한 것이죠.

지난 8월 중순경 문광부는 재단을 담당하는 국정원 직원을 통해 정부광고 대행업무를 기존의 언론재단이 아닌, 제3의 기관에 이관할 수 있다는 얘기를 흘렸습니다.

이 얘기는 향후 재단의 예산문제에 심대한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암시이며, 이는 곧 재단 직원들이 동요를 야기할만한 사인이 되고도 남음이 있죠. 

그 며칠 문광부가 예상하고, 또 의도했던 ‘결과’가 바로 나왔습니다.

재단 노조는 곧장 임원 퇴진운동에 돌입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임원실 앞 복도에서 반 시간 전후로 북을 치고,

‘나 살자고 재단 죽이는 임원진은 물러가라’ 등의 구호를 외쳤습니다.

노조원들은 또 ‘임을 위한 행진곡’ 같은 노래를 부르며 임원들을 압박했습니다.

(대졸초임 4,300만원, 평균연봉 6,500만원을 받는 직원들이 ‘생존권’ 운운하는 것도 우스웠지만, 이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를 때 민주인사들에게 죄송하고 부끄러운 생각이 다 들더군요)


문광부의 비열한 행동은 비단 이 뿐만이 아닙니다.

언론지원기관 통폐합을 들고 나온 것은 물론이거니와 산하 한국방송광고공사(코바코)를 행동대원으로 동원하기도 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이런 식입니다.

언론재단을 비롯해 신문협회, 편집인협회, 기자협회, 언론노조 등 10여 개의 언론단체가 입주해 있는 프레스센터 건물(20층)은 어찌 보면 좀 묘한 건물입니다.

하부 절반, 즉 1~11층까지는 서울신문사 소유이며, 관리도 서울신문사가 하고 있습니다.

반면 나머지 절반, 12~20층까지는 소유주가 언론재단이 아니라 방송광고공사 소유입니다.

그런데 방송광고공사는 프레스센터 건물의 절반을 소유는 하되 관리, 운영권은 한국언론재단에 위탁해 놓고 있습니다. 아마 방송광고공사가 프레스센터를 관리 운영하기에는 부�절해 보였던 모양이지요?

(방송광고공사는 광화문 네거리의 프레스센터 빌딩 말고도 방송회관(목동), 광고회관(잠실), 남한강연수원(경기도 양평) 등을 비롯해 지방 여러 곳에도 건물을 여럿 소유하고 있는데 이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즉, 방송광고공사가 임대업자도 아닌데 이렇게 많은 건물들을 소유할 필요가 무엇일까요? 그건 방송광고공사가 수입이 과도하게 많아 그 여력으로 업무와도 무관한 건물을 세운 것으로 보여지는데, 이들 건물들은 목적에 맞게 필요한 집단에 재배치(조정)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프레스센터 건물은 언론재단에서 소유하고 또 운영하는 게 맞긴 맞지요)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면,

문광부가 정부광고 제3기관 이관설을 흘려 재단 노조가 임원 퇴진운동을 벌이던 무렵 하루는 방송광고공사 사장 명의로 언론재단에 공문이 하나 왔습니다. 내용인즉, 언론재단과 맺은 프레스센터 빌딩 관리운영권을 내년에는 갱신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였습니다. 그간 이렇다할 문제없이 재단이 잘 해오던 것을 뚜렷한 사유도 없이 어느 날 운영권자를 다른 기관으로 교체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놓은 것이죠. 자세한 설명이 없어도 이게 무슨 의미인지 다들 아시겠죠? 앞서 언급한대로 방송광고공사 역시 문광부 산하 기관이며, 현 방송광고공사 사장은 이명박캠프 출신입니다.


결론을 앞세우면, 이 모두는 협박용일 뿐, 실현되지도 않았고, 또 향후 실현 가능성도 적습니다.

여기서 자세히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언론지원기관 통폐합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언론재단 노조도 문광부의 일련의 작태가 협박용이란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간 이런 선례가 수 차례 있었습니다. 특히 정치적 격동기마다 정치권이 이를 악용해 왔다더군요.

그런데 재단에서는 임원실 안으로까지 들어와서 구호를 외치며 임원진 퇴진을 외치던 노조는 정작 사태의 본질, 즉 '재단 흔들기'를 주도하는  문광부에 대해서는 '1인 시위' 한번 벌인 적이 없습니다. 최근 YTN, KBS 등의 언론사태와 관련해 가장 선봉에 서서 투쟁을 주도하는 단체가 전국언론노조(위원장 최상재)인데 재단 노조도 전국언론노조 소속입니다.

범 언론계노조로 분류되는 언론재단 노조는 이번 사태와 관련하여 안팎의 비난을 적잖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밥그릇'만 지킨다면 이 정도 비난은 감수하겠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심지어 상급단체인 언론조노에 대해서도 제명하려면 하라는 식이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들은 오로지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목줄을 쥐고 있는 문광부의 하수인 노릇을 마다하지 않은 채 임원 쫓아내기에만 전력투구했고, 급기야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참고로 문광부 산하기관 가운데 아직도 전 정권에서 임명된 기관장이 상당수 있습니다. 그런데 유독 언론재단 임원들을 빨리 쫓아내지 못해서 안달인 이유가 뭘까요? 이런저런 이유가 있겠지만 따지고 보면 단순명쾌합니다. 대개 다른 기관은 기관장 자리 하나 뿐인데 언론재단엔 이사장 1인, 상임이사 3인 등 '자리'가 4개나 됩니다. 그래서 한번 흔들면 이른바 '1타 4피'가 나오니 언론계 출신 이명박캠프 사람들 4명의 일자리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국정감사에서 한 야당의원이 노조의 부도덕성에 대해 질타한 바 있습니다만,
재단 노조는 오늘까지도 임원들에게 공식사과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어제(30일), 즉 '10월말 퇴진'을 하루 앞두고서 사내게시판에,
'임원진의 양식을 믿는다'는 제하의 글을 올려 약속을 지키라고 거듭 요구했습니다.
말하자면 임원진이 3년 임기를 보장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채 1년도 안된 시점에서 퇴진을 밝힌 것은,
문광부가 임원들의 입지를 줄이기 위해 각종 업무방해를 하고, 그같은 분위기를 파악한 노조가
결국 20여일간 강도높은 퇴진 농성을 벌이면서 결국 임원진이 '항복'을 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이는 '고문에 의한 허위자백'을 한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런데 그 '고문'을 주도한 셈인 노조가 피해자들인 임원들에게 '허위자백'을 고수할 것을
강요한 셈인데, 참으로 가증스런 집단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재단은 매월 마지막 금요일 임원과 전 간부가 참석한 가운데 ‘월례회의’를 갖습니다.
지난 한 달을 마무리 하고 새 달의 계획을 점검하는 그런 자리입니다.
어제(31일, 금요일) 마지막 '월례회의'가 열렸습니다.
이 자리에서 이사장께서는 당초 노조에 약속한대로 오늘, ‘10월말’로 임원 전원이 문광부에 사표를 제출했다고 공표했습니다.
법적으로 아무런 구속력이 없는, 일개 재단 노조와의 약속이지만 임원진은 그 약속을 지켰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당장 내주 월요일부터 출근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임명권자의 사표 수리 절차도 남아 있고, 재단 내부에 현실적인 ‘잔무’가 남아 있습니다.
최근 재단에 ‘정부광고 공금횡령사건’이 발박돼, 남대문경찰서에 수사를 의뢰했었습니다.
수사 결과 재단 내부의 모 차장이 외부인과 짜고 유령 광고제작사를 만들어 3억원이 넘는 거액을 횡령한 사실이 밝혀졌고, 검찰에서도 기소결정이 내려졌습니다.
사규에 따라 ‘주범’인 모 차장은 사내 징계위원회에서 ‘파면’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이 사건 관련자가 15명이나 됩니다.
이들에 대한 징계를 위해 임원 3명과 직원 3명이 참여한 인사위원회가 구성, 관련자들에 대한 소명절차가 진행중인데, 오늘 현재 15명 중 5명의 소명을 마쳤습니다. 소명을 마치고 징계가 내려질 경우 당사자들은 2주일 내에 ‘이의신청’을 할 수 있습니다. 우선은 이 건까지를 마무리해야 할 입장입니다.


추가로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매년 12월 초순에 시행되는 재단 직원들에 대한 ‘근무평가’도 현 임원진이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관련규정에 따르면, 평가자들은 ‘3개월 이상 재직한 자’라야 가능하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내일, 즉 11월 1일자로 새 임원이 선임된다고 해도 그들은 금년도 근무평정 평가자로서의 자격이 미달인 셈입니다.


오늘 아주 씁쓸한 기분으로 월례회의를 마쳤습니다.

평소 같으면 임원들끼리라도 저녁식사를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라도 나누며 기분을 풀 텐데 오늘따라 세 분 임원들이 모두 선약이 있어서 각자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혼자 사무실에게 어정거리다가 7시 반 경 사무실을 털레털레 나섰습니다.

기분도 그렇고 해서 모처럼 집에 가서 가족들과 식사나 하려고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밖에 볼일이 있어서 나와 있다며 저녁식사를 밖에서 해결하고 오면 좋겠다는 거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내를 원망할 일은 아닙니다. 아내는 오늘 저녁 모처럼 밖에 볼일이 있었고, 또 저의 이런 상황을 자세히는 몰랐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참말로 거시기한 날 같습니다.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아내와 통화를 끝낸 뒤 건물 밖으로 나오다가 재단에서 말이 통하는 A에게 전화를 걸어 술이나 한잔 하자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친구 역시 기분도 그렇고 해서 오늘은 일찍 퇴근했다더군요.
광화문까지 다시 나오려면 적어도 3, 40분이 족히 걸린다 길래 그러면 그만두라고 했습니다.
이번엔 후배 B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하필 오늘 당직이어서 저녁식사 중이라고 했습니다.

후배 B와 통화를 하고 있던 중 마침 내 곁을 지나가던 후배 C를 붙잡아 어디 가느냐고 물었더니 선약이 있어서 누굴 만나러 간다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후배 C도 보내고 다시 후배 D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그 역시 멀리 있다고 하더군요. 마지막으로 후배 E에게 전화를 걸더니 그는 마침 오늘 저녁이 마감인데다 이미 30분 전부터 식사를 하고 있던 참이라고 하더군요. (이들과는 사전에 저녁약속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이 내게 시간을 내주지 않았다고 해서 이들에게 불만은 전연 없습니다. 뭐랄까, 마치 '머피의 법칙' 같은 거 처럼 오늘은 도대체 일이 잘 안풀렸다는 얘깁니다)  

결국 모든 걸 포기하고 걸어서 집으로 오던 중 독립문 네거리 인근에 있는 유명한 도가니탕 집 앞에 제 발길이 멈췄습니다.
이내 탕이 나와 몇 술을 뜨면서, 한 지인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오늘, 시월의 마지막날 사표를 썼습니다.
기분 더럽네요... XXXX
혼자서 저녁 먹고 있슴돠”

그에게서 곧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따뜻한 위로의 한 마디와 함께 너무 멀리 있어서 미안하다는 말을 하더군요. 그리고 바로 직후 여러 통의 낯익은 사람들의 전화와 문자가 잇달았는데, 받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지쳐서 더 이상은 누굴 만나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식사 후 내 발길 인근 ‘독립공원’으로 향했습니다.

그 상황에서 만나 대화하고 싶은 분이 한 분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바로 강우규 의사였습니다.

강 의사는 1919년 9월 2일, 새로 부임하는 사이토 총독의 마차에 폭탄을 던졌다가 붙잡힌 후 이듬해 이곳 서대문감옥(현 독립공원)에서 순국하셨습니다.

나는 요즘 강 의사의 일대기를 쓰고 있는 중인데, 문득 강 의사님이 보고 싶어졌습니다.

독립관 앞에서 담배 몇 대를 피우며 강 의사님을 그리다가 집으로 왔습니다. 


냉장고에서 맥주 한 병을 꺼내 안주로 김을 찾았는데,

식탁 위에 늘 잇던 김이 오늘따라 이곳저곳을 다 뒤져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담배를 안주삼아 술을 마셨습니다.

베란다에서 남산 쪽을 내다보니 남산타워가 야간조명 속에 우뚝 솟은 가운데,

그 앞으로 YTN 사옥 꼭대기의 ‘YTN’ 석자가 선연히 보이더군요.

그간 이른바 ‘공직’에 매인 몸이라 격려방문 한번 하지 못했는데,

이제 조만간 한번 찾아가 보아야겠습니다.

불의에 맞서 싸우고 있는 YTN 동지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아까 컴퓨터를 켜면서 네이버에 들어가 봤더니 좌측 상단 ‘실시간 검색어’ 5위에
인명이 아닌 낯익은 유행가 제목 하나가 올라와 있었습니다.

‘잊혀진 계절’



80년대 중반(?) 가수 이용이 불러 공전의 히트를 친 노래죠.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뜻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우리는 헤어졌지요....

그러고 보니 오늘 저녁이 ‘시월의 마지막 밤’이군요.

내 목숨이 끊어지는 그 날까지,
2008년의 ‘시월의 마지막 밤’은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출처 : http://blog.ohmynews.com/jeongwh59/230542 

글쓴이 : 정운현 전 언론재단 연구이사